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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수업 금지? 안 하면 '영포아' 되는 시스템부터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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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의 소수의견]

영어교육전문가 이병민 서울대 교수 인터뷰
유아 영어수업 금지 논란에 "공급자 마인드" 지적
"조기교육 효과 없지만… 학부모 '욕망' 파악해야"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사진)는 조기교육 무용론자다. 이번 유·초등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논란에서 찬성 쪽 전문가로 인용됐다. 하지만 지난 22일 서울대 사범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의 주장은 결이 조금 달랐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질문했다. 첫째, 학습효과 측면. 그는 “영어 조기교육은 효과가 없다”는 지론을 폈다. 둘째, 정책효과 측면. 이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을 찍었다. 조기교육 없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우게 하려면, 그렇게 해도 손해 보지 않는 시스템 먼저 갖추라는 지적이다.

- 조기교육 하면 발음은 좋아지는 것 아닌가.

“글쎄, 영어 단어 몇 개 수준 아닌가. 오케이. 발음 좋아진다고 하자. 그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 전제를 잘 봐야 한다. 조기교육을 어디에서 받나. 대부분 국내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며 영미권 국가의 식민지였던 적도 없다. 일상적으로 영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내 답이다. 우리는 원어민 수준 영어를 구사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 효과가 전무하다?

“거의 없다. 있다 해도 미미한 수준이다. 연령이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는 거다. 몰입 효과가 없으면, 즉 현지에서처럼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조기교육 받았다고 해서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코끼리에게 비스킷 하나 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 이번에 논란이 된 유아 영어수업 금지도 비슷하게 보는지.

“학습효과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다. 유아기에 영어수업 받아 영어를 잘하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거의 효과 없다’고 답하겠다. 우리나라 같은 영어 조기교육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 대만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지금은 유치원 단계 영어교육을 금지했다.”

-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반대 여론이 심한데.

“왜 그런 거라고 보나?”

- 10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은 놔두고 2만~3만원짜리 방과후 영어수업만 못하게 막는 건 불공정하다는 게 많은 학부모들 생각이다.

“조기교육으로 영어능력 자체가 발달하느냐, 물었을 때 ‘노’라고 했다. 조기교육을 통해 아이가 영어시험 점수에서 앞설 수 있느냐, 묻는다면 ‘예스’다. 영·유아기 교육이 축적돼 격차가 벌어지면 학교 입학 후에도 따라가기 어렵다. 교사들 말을 들어보면 초등 3~4학년쯤 되면 이미 ‘영포아’(영어포기아동)가 생긴다더라.”

- 국어나 수학보다 영어가 그런 경향이 강하지.

“개중 부모 소득과 가장 일치하는 게 영어다. 영어 점수는 학교 수업으로 판가름 나는 게 아니다. 거의 사교육이다. 사교육은 돈이니까. 초등 5~6학년 아이들에게 한 주간 영어 관련 활동을 모두 기록하게 하는 실험을 한 적 있다. 대치동 아이는 주24시간, 1440분이 나왔다. 지방에 사는 아이는 40분 수업 두 번 해서 딱 80분. 1년 쌓이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지.”

- 그나마 방과후 수업까지 막으면 사교육으로 내몰리니 분노하는 듯하다.

“결국 학원에 가서 하란 얘기냐, 여유 없는 사람은 그것도 못 하는 거냐…. 영어 격차를 가장 피부로 느끼는 사람이 학부모다. 아이의 실제 영어능력을 기르는 것과는 별개다. 사실 학부모 관심사는 ‘영어 성적’ 아니냐.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조금 더 일찍 출발해 다른 아이보다 높은 점수를 받고 입시와 취업까지 성공하느냐의 문제다.”

- 정책은 그런 학부모의 ‘욕망’을 기본값으로 놓고 설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책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정부가 수요자인 학부모 입장을 세밀하게 안 살피고 공급자 시각에서 추진한 측면은 있어보인다. 학부모는 가장 민감한 이해당사자다. 이상론으로 설득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아이에게 최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니까.”

- 최적의 결정이란 도덕적 결정이 아닌 합목적적 결정을 뜻하나.

“그렇다. 먼저 ‘내 아이가 손해 안 보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따라오라고 해야 정책이 먹혀들 것 아니냐. 이제 조기교육이 큰 효과 없다는 걸 알아차린 학부모도 꽤 된다. 그럼에도 조기교육, 사교육 못 놓는 현실적 이유를 정확히 보자. 정책은 거기에 맞춰 펴야 하는 거다.”

- 현장의 욕망을 인정하고 정책을 추진하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고, 핵심을 끊어주는 논리가 있어야 정책이 통하겠지. 사교육이 문제야, 조기교육 의미 없어, 백날 얘기해봐야 그만두겠나. 정부 말처럼 초등 3학년 때 시작해도 ‘영포아’로 전락하지 않도록 시스템부터 갖추면 알아서 그만둔다.”

- 그게 가능할까.

“지난 20~30년 한국은 영어공화국이었다. 영어유치원, 사립초등학교, 국제중, 외국어고, 영어특기자전형, 대학 국제학부… 영어로 좋은 학교 들어가는 프리패스 루트였다. 일반 학교 영어교육을 받은 사람은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래놓고 영어 사교육, 조기교육을 잠재우겠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 하… 어렵겠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 되니 고교 단계 사교육이 확 줄었다. 물론 사교육은 영어부터 빨리 마치고 국어·수학 준비하라는 식으로 대응하더라. 이건 철저히 ‘게임’이다. 이론이나 이상적 논리만 갖고는 안 된다. 수요자에게 최적의 안이 뭔지 항상 염두에 두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그는 어릴 때 배울수록 언어습득 효과가 크다는 일반론을 반박한다. 실증된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다. 외국 사례긴 해도 다른 연구 결과는 있다. 스페인 대학생의 영어능력을 측정했더니 최근에 얼마나 집중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구사했는지가 가장 영향력 큰 변수였다.

- 시작 연령보다 몰입 사용 환경이 더 중요한 거구나.

“영어를 일상어로 쓰지 않는 한국에선 조기교육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외국인들 봐라. 한국어 조기교육을 받진 않았을 텐데 다들 한국어 능숙하게 구사한다. 매일 일상에서 한국어로 얘기하니까 그런 거다.”

- ‘일찍’보다 ‘계속’이 관건.

“한국에서 영어를 하려면 평생 해야 한다. 조기교육 안 해 영어가 약하다? 틀린 가설이다. 일단 한국 사람은 일상에서 영어를 쓸 필요도, 할 기회도 많이 없다. 그나마 하는 게 학교에서 영어수업 듣고 학력고사나 수능 영어시험 치르는 정도다.”

- 그래도 10년 넘게 영어 배웠는데 말 한 마디 못 하는 건 문제 아니냐.

“굉장한 착각이다. 언어를 배우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들어간다. 우리가 보통 10년 넘게 영어 배웠다고 하는데 잘 따져보자.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교 50분짜리 영어수업 들었다. 다 합쳐 대략 750~800시간 정도 된다. 하루 8시간씩 집중적으로 딱 100일만 하면 그만큼 할 수 있다.”

- 정말 얼마 안 되네(웃음).

“그 800시간도 온전히 배우는 데만 쓰진 않았을 거고. 순수하게 공부한 시간은 한 600시간이나 될까? 또 우리네 영어 공부란 게 대부분 문법과 독해 아니냐. 언어의 4가지 영역 가운데 읽기 말고 듣기, 쓰기, 말하기는 손도 안 댔다. 공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잘하길 바라나.”

- 그렇게는 생각 안 해봤다.

“10년간 했는데 못 하는 건 문제 아니냐, 너무 늦게 배워 발음이 후진 것 아니냐… 우리가 왜 영어를 못하는지 나름대로 수수께끼를 푼 거지. 그렇게 낸 답이 틀렸다고 본다.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다. 방송에 나오는 교포들 보면서 ‘저 정도 영어는 해야 하는구나’ 오해한 거다. 그럴 필요 없다. 원어민처럼 할 이유도 없고 소통만 잘 되면 된다.”

만약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교수들이 방송에 나가 영어로 말했으면 그런 오해는 없었을 거라며 그는 슬쩍 웃었다.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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