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 김낙훈 기자 ]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인과 소공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실타래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많은 난제가 있지만 결국은 글로벌 경쟁력 문제로 집약된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 김승일 파이터치연구원장과 곽의택 한국소공인진흥협회장의 견해를 들어봤다.
"한국式 연공서열제도 확 바꿔야 기업의 창의성·역동성 살아난다"
◆김승일 파이터치연구원장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한국형 연공서열제도부터 개편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정책도 자유롭게 기업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생태계’ 조성으로 바꿔야 합니다. 지금처럼 개별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으론 곤란합니다. 규제와 제도가 ‘자유와 경쟁’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김승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64)을 이달 초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만났다. 정부 산하 연구원들이 주로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과는 달리 파이터치연구원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 연구원을 이끄는 김 원장은 단순히 책상에서 연구만 한 게 아니다. 생산성본부 컨설턴트, 광림특장차 사장, 벤처 창업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과 중견기업연구원장을 거치며 10년 이상 연구 업무에도 종사했다. 그에게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김 원장은 ‘한국형 연공서열제도’가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일본도 연공서열제도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승진 자격을 구체화한 능력으로 정의해 적용하는 등 단순 연공서열제보다는 능력 기반 연공제도라 볼 수 있다”며 “한국은 세계적으로 단순 연공서열제도가 가장 굳건한 나라”라고 덧붙였다. 그는 “초임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은 30년 근속자의 급여가 328.8 수준”이라며 “이는 일본 246.4, 독일 210.2, 영국 160.1 등 비교 국가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연공서열제도에 대해 “숙련 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할 수 있으나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생산성을 웃도는 불공정한 보상체계 때문에 전체 고용이 줄고, 소득 불공정성이 만연한 점을 꼽았다. 상하 서열관계가 만들어져 조직 전체가 관료화하고, 창의 발현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직 순혈주의를 추종하기 쉽고 외부 인재에 폐쇄적이어서 조직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며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아홉 가지 나쁜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개별 중소기업을 직접 지원하고 있는데, 자유롭게 창업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별 기업 지원은 산업 전반의 기술력 제고에 한계가 있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효과도 불확실한데 언제까지 개별 기업 지원에 매달려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김 원장은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은 주로 ‘사업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는데 이를 ‘더 좋은 일자리 창출’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정책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한국 경제 전반의 기업 생태계가 중소기업 친화적 환경이 되도록 정책을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20년간 일자리가 현재(2631만7000개, 2015년 기준)에 비해 약 4.7%(124만4217개) 줄어들 것”이라며 “직무 교육 및 사회보장보험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소프트웨어 설계자 같은 비반복적 인지노동 일자리는 33만4820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컨대 빅데이터 분석가, 정보통신기술 엔지니어, 음악가, 사회조사 분석사, 작가, 영업전문가, 컨설턴트 등의 일자리는 증가할 것으로 봤다. 반면 부품조립자 같은 반복적 노동 일자리와 음식점 종업원 같은 비반복적 육체노동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원장은 “일자리 감소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현장 경험을 우대하고 교육제도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며 “사라질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의 전직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는 소공인 경쟁력 강화 위해 제품개발 협업 풍토 조성에 힘쓸 것"
◆곽의택 한국소공인진흥협회장
“올해는 ‘소공인 활성화를 위한 해’입니다. 작고 민첩한 소공인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정책을 건의하고 지회도 확대할 생각입니다.”
곽의택 한국소공인진흥협회장(63)은 “소공인들은 제조업의 실뿌리”라며 “전국에 있는 약 40만 개의 제조업체 중 80%가 소공인일 정도로 제조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공인은 종업원 10명 미만의 제조업체를 의미한다. 선반 밀링 프레스 등을 활용한 금속가공을 비롯해 봉제, 안경 제조, 완구 제조, 가구 제조 등의 업무에 종사한다. 정밀금형 자동차부품 방위산업부품 등은 물론 각종 시제품이 소공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그는 “일본은 소공인을 위한 정책이 중소기업 정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이 분야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소공인은 그 자체가 경제의 뿌리일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소득 창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곽 회장은 “일본에선 소공인들이 모여 신제품을 공동 개발하거나 공동으로 수주에 나서는 등 공동사업이 활성화돼 있다”며 “이를 한국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일본의 대표적 중소기업 밀집 지역인 도쿄 오타구에서는 100여 개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위해 오타구를 자주 찾는 곽 회장은 “협업에 소공인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한국소공인진흥협회는 소공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로 2012년 설립돼 현재 전국에 58개 지부를 두고 있다.
교토의 중소기업들은 ‘교토시작네트’라는 조직을 만들어 공동 수주에 나서고 있다. 금속가공업체 100개가 회원이며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기업은 29개다. 이들은 공동으로 마케팅에 나서 15년 동안 회사당 약 10억원어치를 추가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곽 회장이 협업을 강조하는 것은 불황을 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학·연 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불황을 넘으려면 자신만의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소공인들은 인력과 자본이 달려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공과대학, 생산기술연구원 등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산학연협회, 생산기술연구원, 인덕대학, 동양미래대학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도 성공모델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곽 회장은 “일본과 국내 소공인은 기술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며 “일본 기업들은 활발히 협업하고 있지만 국내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소공인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활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 11월에는 ‘한국소공인미래포럼’을 출범시켰다. 강소공인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포럼이다. 이 포럼에는 박홍석 한국소공인학회 회장, 박군종 동양미래대 교수 등 소공인 연구에 관심을 가진 학자 등 80여 명이 참가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공인 지원 정책, 소공인 직업능력 개발훈련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곽 회장은 “소공인은 시제품 제작, 다품종 소량 주문 소화에서 특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소공인 발전과 이들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포럼을 발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이 포럼을 더욱 활성화해 각종 정책 아이디어를 발굴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국에 있는 각종 소공인단체와 연합해 공통 관심사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며 “소상공인연합회와도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회장은 젊은 시절 주물공장 근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만학으로 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거쳐 호서대에서 기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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