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의 역습
역풍 거센 '약자 위한 정책'
어렵게 일자리 구해도 노동강도 세져 '파김치'
택시 사납금 갑자기 올라 기사들 집단 반발도
햄버거·찌개 등 서민 음식값 줄줄이 치솟아
소득주도성장 첫발부터 삐끗… J노믹스 '빨간불'
[ 황정환/안재광/이유정/장현주 기자 ]
서울 독산동에서 고기뷔페 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 사장(39)은 올해부터 저녁 피크시간대 서빙 아르바이트생을 기존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모자라는 일손은 어쩔 수 없이 자신과 60대 노모가 직접 맡기로 했다. 김 사장은 “(자신은) 식자재 관리와 영업 준비 외에 식사시간에는 주로 계산대를 맡았지만 앞으로는 어머니께 부탁드리고 홀 서빙을 직접 뛰기로 했다”며 “한 달 내내 휴일 없이 일해도 남는 돈이 월 400만원 선인데 도저히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약자를 위한 정책에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형국이다.
아르바이트생 줄이고 노모까지 동원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지난해보다 16.4% 인상되면서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고용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한 공공 주차장은 이달부터 주차관리 인력을 약 10%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한 주차요원은 “물론 나간 사람도 어렵겠지만 하루 9시간 일하고 한 달에 몇 번 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은 사람들 역시 더 힘들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연희동의 한 주유소도 3월부터 기존에 쓰던 심야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영업 시간을 단축할 예정이다. 이 주유소 사장은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한시 프로그램이라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강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과거에 없는 ‘근무자 행동 수칙’을 만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시간대별로 상품 발주부터 진열, 청소 등에 이르기까지 할 일을 빼곡히 적은 매뉴얼이다. A씨는 “아르바이트생 임금이 계속 오르는데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때우게 할 수는 없다”며 “많이 주는 만큼 일도 더 시킬 것”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들도 최저임금 인상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 5일 경기 양주시 덕정역 광장에서는 민주택시노조원 30여 명이 회사 사납금 인상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회사가 어용노조와 결탁해 하루 사납금을 무려 8만2000원 올렸다”며 “한 달 사납금 326만원을 내면 월급은 83만원 수준으로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해 9월 의정부에서도 시내 15개 택시업체들이 사납금을 3만5000원 인상했고 이어 11월에는 화성시 택시업체들이 사납금을 1만9000원 올리고 초과 수입의 40%를 별도로 떼겠다고 해 기사들이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잇따르는 가격 인상… ‘무인 매장’ 급증
외식프랜차이즈업계에선 이미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 KFC는 지난달 29일부터 치킨, 버거, 사이드, 음료 등을 포함한 24개 메뉴 가격을 100~800원 인상했다. 평균 인상률은 5.9%다. 롯데리아도 지난해 11월 불고기버거 100원, 새우버거 200원을 인상하는 등 버거와 디저트, 음료 가격을 올렸다. 놀부부대찌개와 신선설농탕 등 한식 프랜차이즈와 치킨업계 등도 올 들어 가격을 일제히 인상하거나 인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저가, 최저가를 내세운 커피와 분식점, 패스트푸드 매장 등은 무인시스템 도입에 나서고 있다. ‘900원 커피’로 알려진 프랜차이즈 ‘커피만’은 지난해 말부터 서울 강남역점을 시작으로 시청역점, 방배역점, 선릉역점, 홍대점 등 무인결제 시스템을 늘렸다. 이대앞과 강남역, 학동역 등에는 아예 커피 기계만 있고 소비자가 직접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한 무인카페 ‘터치카페’도 등장했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이 예고된 작년 말부터 무인결제 시스템 도입에 관한 점주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분식점도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는 대신 키오스크 도입에 나섰다. 주문결제용 키오스크 평균 가격은 대당 300만~700만원. 예를 들어 종업원 3명(1인당 연간 인건비 1888만원·최저임금 적용) 대신 500만원짜리 키오스크 1대를 도입하면 총비용이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을 주고 직원을 고용하는 사업주들 자체가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로 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없었던 게 문제”라며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 방향성은 맞지만 올해처럼 급격히 올리면 정책적 취지를 거의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황정환/안재광/이유정/장현주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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