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제도 사각지대'가 만든 어린이집 '안전 사각지대'
우리 아이 어떻게 맡기나
보육교사들, 위기상황 닥치면
119에 신고뿐… 응급조치 못해
어린이집 안전사고 해마다 급증
5년간 사망 어린이 55명 달해
구멍뚫린 응급조치교육·제도
교육 대부분은 온라인 강의
실습 없이 이론만 '겉핥기' 그쳐
정부는 어린이집 안전관리 '뒷짐'
심장충격기 설치 의무조차 없어
[ 이현진/신연수 기자 ]
“바로 앞에서 응급사고를 목격하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지난 20일 저녁, 대부분의 아이가 하원한 서울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A씨가 뇌진탕으로 쓰러졌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A씨의 혀가 기도를 막았다. 곧바로 119에 신고했지만 퇴근시간이 겹쳐 출동은 늦어졌다. A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눈동자가 뒤집히자 처음 맞닥뜨리는 응급상황에 함께 있던 보육교사들은 우왕좌왕했다. 다행히 인근 파출소에서 달려온 경찰 3명이 119상황센터의 전화 안내를 받아 A씨의 기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119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6분. 의학적으로 기절 후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은 단 4분이다. 현장에 출동한 순경은 “아이가 쓰러졌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졌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고 말했다.
◆‘안전 사각지대’ 전락한 어린이집
아이들이 일과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 가장 안전해야 할 이곳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두 살배기 원생이 포도 모양 장난감을 삼켜 기도가 막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 보육교사 두 명이 있었지만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25분이 지나서야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료용 핀셋으로 기도에 걸린 장난감을 제거했으나 아이는 끝내 숨졌다.
실제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보육교사는 많지 않다. 한 어린이집 원장 B씨는 “응급처치 교육을 이수한 교사가 있었지만 잠깐 실습해본 수준으로 실제 위급상황에 대처하기는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는 결국 유아의 생명과 직결된다. 최근 5년간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로 사망한 아동 수는 총 55명.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7월까지 어린이집에서 이물질 삽입과 화상, 급식 식중독, 통학버스 교통사고 등 총 3만1203건의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그 규모 역시 △2012년 2488건 △2013년 4196건 △2014년 5814건 △2015년 6786건 △2016년 8532건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사고 횟수는 정부 집계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영유아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은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즉시 보호자에게 알리고 사고가 중대한 경우 시·도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중대한 사고’를 규정하는 세부 내용이 마련돼 있지 않아 축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실습 없는 보육교사 응급처치 교육
보육교사에 대한 응급처치 교육의 부실이 안전사고 급증의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 응급처치 교육 이수는 의무사항에 포함돼 있지 않다. 각 대학 유아교육과 등 교육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이상 교사들은 심폐소생술 하는 법을 모른 채 어린이집에 취직해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게 된다. 서울 한 구청의 보육정책 담당자는 “보육교사가 3년마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보수교육 중 ‘보건위생관리’라는 과목에서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를 배우는 방식으로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 보수교육은 실습 없는 온라인 강의로 이뤄진다. 전남 순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10년째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몇 달 전 한 원아가 경련을 일으켰을 때 별다른 응급처치를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119구급대를 기다렸다. 그는 “보수교육 과목이 워낙 많고 일일이 시험을 쳐서 통과해야 해 응급처치 한 분야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보수교육 외에도 3년마다 전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평가인증제도를 통해 응급처치 교육을 일정 부분 의무화하고 있다. 보육교사가 각 지방자치단체 소방서 등을 통해 응급처치 교육을 이수했는지 여부를 평가인증 지표 중 하나로 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0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 교실에 모여 소방관 한 명으로부터 심폐소생술, 기도확보 등에 관한 이론을 배우고 각자 실습을 한다. 이 같은 2~3시간짜리 일회성 교육조차 모든 보육교사가 받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집당 한 명이 대표로 받고 각 어린이집에 돌아가 교육받은 내용을 전달해도 무방하다.
◆구멍 뚫린 법망…“지원·제재 병행해야”
응급의료법과 영유아보육법에도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은 제세동기 설치의무자 목록에서 빠져 있다. 복지부는 재작년부터 각 지자체에 ‘공공장소 및 다중이용시설의 자동심장충격기(AED) 설치 및 관리 지침’을 전달해 불특정 다수의 이동이 많고 빠른 시간 내에 해당 기관에서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자동심장충격기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침은 각 지자체에 내리는 가이드라인일 뿐 지키지 않아도 규제나 제재는 없다.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일수록 제대로 된 관리를 기대하긴 어렵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영유아 100명 이상을 보육하는 어린이집은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 1명을 두도록 돼 있지만, 그 이하 어린이집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복지부는 이달 3일부터 법정 의무교육 대상자에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추가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교육 내용은 마련하지 않았다. 김유미 복지부 보육정책과 팀장은 “보육교사 대상 보수교육 전반에 대한 개편안은 갖고 있지만 개별 과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며 “법 개정이 이뤄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과중한 근로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들이 따로 시간을 내 응급처치 교육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충분한 교육과 실습을 통해 응급처치법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교육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진/신연수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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