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616쪽│2만7000원
[ 서화동 기자 ]
1936년 7월17일 런던의 합동통신사(UP)에 스페인 마드리드 지국에서 보낸 전문이 도착했다. 알 수 없는 말들로 조합된 전문의 각 단어 첫 글자를 조합해보니 내용은 이랬다. ‘멜리야 주둔 외인부대 반란 일으킴. 계엄령 선포.’ 멜리야는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모로코의 도시였다. 군 장교 수백 명이 병력 수만 명을 이끌고 멜리야와 스페인 본토를 장악하기 위해 치밀하고 조직적인 반란을 일으킨 것. 스페인 내전의 시작이었다. 반란의 주모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훗날 36년 동안 악명 높은 독재자로 군림했던 그 프랑코였다.
당시 스페인은 국내외의 기대 속에 5년 전 독재적인 왕정을 끝내고 탄생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정세는 불안했지만 1936년 2월 총선에서는 자유주의파, 사회주의당, 스페인 공산당 등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우익의 막강한 금권 공세를 물리치고 총선에서 승리해 개혁에 대한 기대가 드높았다. 하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반란을 일으켰고, 스페인은 1939년까지 군인과 민간인 등의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인민전선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각국에서 자원해 참전한 국제여단의 활약상과 그들의 관점으로 본 스페인 내전 및 그 여파를 정리한 책이다. 스페인 내전은 표면적으로는 개혁을 추진하려는 중산층·노동자 중심의 공화파와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교회·지주·군부·자본가 중심의 국가주의파 사이의 정권 다툼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이념 투쟁이 바탕에 깔려 있었고, 이로 인해 스페인은 내전을 넘어 국제적 이념의 전쟁터가 됐다.
프랑코는 4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군을 스페인 본토로 공수하기 위해 당시 유럽의 두 독재자였던 이탈리아의 베니토 뭇솔리니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의 경쟁적 지원 속에 반군 1만5000명이 불과 며칠 사이에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공수됐다. 반군은 반란을 일으킨 지 불과 몇 주 만에 스페인 영토의 3분의 1가량을 점령했다.
반면 공화파는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공화파는 프랑코 반군에 맞서기 위해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무기를 사야 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스페인 내전이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되는 걸 우려하면서 내전을 국지전으로 묶어두기 위해 불간섭 정책을 폈다. 경제 대공황의 후폭풍을 수습하기에 바빴던 미국도 스페인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공화파에 무기를 팔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민주국가가 아니라 소련이었다. 파시즘 국가가 확산되면 소련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스탈린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내전 시기에 함께 진행됐던 사회혁명이다. 쿠데타 초기 공화파 지역을 지킨 것은 민병대였다.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무정부주의 민병대가 활약하며 아래로부터의 사회혁명을 일으켰다. 특히 스페인공산당의 요청에 따라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이 조직한 국제여단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 각국에서 지원병이 모여들었다. 53개국에서 3만5000여 명이 국제여단에 참여했다.
저자는 특히 국제여단의 각국 부대 중에서도 미국 의용병 부대였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대의 병사들이 남긴 기록물과 일기를 중심으로 책을 전개한다. 미국은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2800여 명의 미국인들이 스페인으로 향했고 750여 명이 전사했다. 이들의 출신 성분은 지식인, 학생, 의사, 간호사, 일반인 등 다양했다. 이들의 이념도 사회주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등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에는 차이가 없었다.
국제여단에는 유명 인사들도 많이 참여했다. 북미신문연맹의 종군기자로 파견됐으나 취재보다는 공화파 지원에 더 열중했고 나중에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정부주의 조직 POUM 민병대로 참전해 그 경험을 《카탈루냐 찬가》로 남긴 조지 오웰, 비행대대를 조직해 공화파를 지원한 앙드레 말로, 파리 일간지 특파원으로 활약했던 생텍쥐페리가 대표적이다. 미국인 경제학도로서 국제여단에 참여해 존경받은 로버트 매리먼, 영국의 조각가 팻 거니, 시인 제임스 네우가스 등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이들의 순진하리만치 순수했던 정신과 희생에도 공화파는 내전에서 졌고,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에 신음해야 했다. 또한 스페인 내전은 곧바로 터진 2차 세계대전의 그늘에 가려 거의 잊혀진 전쟁이 됐다. 저자는 이런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때로는 정의가 이기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들의 순수했던 이상과 용기, 도전과 희생은 후세에도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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