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칼럼에서 ‘객(客)-이(異)-동(同)’이란 리우쓰띵(劉世定) 베이징대 교수의 ‘중국 현지화의 3단계’ 전략을 소개한 적이 있다.
첫 번째 ‘객’의 단계에서는 손님을 예로써 대우(以禮相待)하는 중국의 문화적 특징을 말했다. 이 단계에서 이방인들은 손님(客)으로서 환대를 받는다.
다음 단계, 즉 중국사회 속에서 사업 또는 개인적으로 섞이게 되면 이제 이방인으로서의 다름(異類)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는 생략하고 넘어갈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중국문화를 나타내는 여러 단어와 개념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가족(家)’이다. 중국문화 속의 가족은 철저히 혈연이다. 다름(異)으로 인해 힘든 단계를 생략하고 동(同類)의 단계로 갈 수 있는 조건은 혈연 이외에는 없다. 지연이든 학연이든 그밖에 어떤 경로 또는 경험을 통하더라도 혈연 외에는 다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중국인끼리도 예외가 없다.
만약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중국인으로부터 이런 혹독한 경험을 당해보지 못했다면 둘 중 하나다. 아직 첫 번째 단계이거나 아니면 이미 두 번째 단계임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어쨌든 지금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두 번째 단계에 와 있다. 여기에서 머물고 있다.
세 번째 단계인 동류로서, 친구로서 인정(認定)을 받고 ‘의리(義理)’와 ‘인정(人情)’을 나누는 관계로 진입해야 할지 여부는 우리의 선택이다. 만약 동류가 돼서 중국인 및 중국 기업들과 (큰) 차별 없이 경쟁하려면 현지화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중국에서의 ‘현지화 자신감’과 ‘현지화 강박관념’만 발견해도 많은 문제가 분명해질 것이다.
'중국을 잘 안다'는 자신감뿐
소노다 시게로라는 일본인 학자는 상하이 근처 도시에서 근무하는 일본계 및 한국계 주재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한국인 주재원은 일본인에 비해, 좋든 나쁘든 중국인에 대해 명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근면하다’는 항목에 대해 찬성한 사람이 30.6%, 반대한 사람은 57.1%,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12.2%였다.
반면 일본인 주재원의 경우는 각각 39.0%, 18.2%, 42.9%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대답이 현저히 많았다. 또 대체로 한국계 주재원들은 응답의 표준편차가 매우 크고 이미지가 분산돼 있음을 지적했다.
이 조사를 더 쉽게 정리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을 잘 안다고 여기는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말이다. 똑같은 오답이라면 오히려 문제는 간단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조사 결과는 중국에서 일하는 주재원들-이들도 자신들이 속한 그룹에서는 중국전문가일 것이다-은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제각각 ‘다른 오답’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현지화의 정점을 현지인에게 현지책임을 맡기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중국에 발령받은 지 1년이 채 안 되는 A법인장은 중국인들의 근면성과 열정에 깜짝 놀랐다. 부임 전에 듣던 바와 달리 매우 성실했고 희생정신도 투철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에게 맡기는 게 현지화?
그는 이듬해 현지화 전략을 본사에 보고한다. 중국 직원에게 중국 사업을 맡기자는 장기 목표가 포함돼 있었다. 그의 주장은 ‘현지화’라는 큰 그림에 들어맞는다. 현지화가 이제껏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전임자들의 현지 직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정리된다.
사실, 이는 어느 회사의 실제 사례가 아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회사들이 반복적으로 겪어온 모습이다. 이 가상의 그러나 매우 전형적인 사례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한·중수교 25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도 현지화에 대한 성공모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현지 업무를 가능한 한 현지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현지화 강박관념’이다.
중국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천치난(陳其南)과 이이위안(李亦園) 등은 논문을 통해 “중국인에게 가족의 의미는 다른 민족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으며, ‘회사를 내 집같이’라는 식의 구호는 효과가 없음을 지적했다.
중국인의 ‘가족 위주’ 사상을 알고 나면 그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희생정신은 조직에 대한 충성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 눈에는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방인인 우리가 이를 인식하고 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현지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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