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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랑의 영화랑] '1987'이 보여준 상업영화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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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화이' 장준환 감독 연출
"전국민이 주인공이었던 1987년, 진심 담았죠"

대공수사처 박처장 역 김윤석
"박종철 열사, 고등학교 선배…'탁 치니까 억' 내가 하게 될 줄은"



영화관은 그리 달라진 것 없지만 영화표 가격은 어느새 1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4인 가족이 주말 영화 나들이 한번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데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만 보나요. 캐러멜 팝콘도 먹고 싶고, 콜라도 먹어야 하니까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영화 선택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잘 빠진 예고편에 낚이는 일 없어야겠죠. 실패 없는 영화 선택을 위해 신작들을 만나봅니다. 당신(의 시간과 돈)은 소중하니까요. <편집자주>

◆ 1987 (1987 : When the Day Comes)
장준환 감독|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출연|드라마|12월 27일 개봉|129분|15세 관람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 두 살 대학생이 사망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1987'은 6월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전두환의 7년 독재 끝자락,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국민은 '빨갱이'가 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는 일이 왕왕있었습니다.

대공수사처의 고문은 모질기로 유명합니다. 대학생 박종철은 그렇게 남영동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물이 흥건히 고인 차가운 취조실 바닥에서 말입니다.

경찰은 증거인멸을 위해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의 주도하에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공교롭게도 꼴통으로 유명한 최검사(하정우)의 당직 날입니다.

그는 경찰의 요청을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이지만 경찰은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언론에 거짓 발표를 합니다.

현장과 시신은 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정확히 가르킵니다만 박종철의 아버지는 스물 두 살 된 아들을 차갑게 얼어붙은 강물 속에 흘려 보내야만 했습니다.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박종철이 물고문 도중 질식사 했다고 '팩트'를 보도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혐의로 조반장(박희순)이 대표로 수감됩니다. 그와 박처장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이 사실을 수배 중인 재야인사 김정남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조카인 연희(김태리)에게 위험한 부탁을 하게 됩니다.

무고한 한 젊은이의 죽음을 접했던 모두는 나름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충실했던 이들의 행동은 사슬처럼 맞물려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 냅니다.

권력의 이해관계 아래에서 숨죽였던 사람들이 티끌같은 용기를 내고 결국 태산이 되어 박처장의 목을 옥죕니다. 6월의 어느 날 진실은 광장으로 집결하고,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에 울립니다.


영화 '1987'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건을 큰 줄기 엮어 영화적 상상을 더한 작품입니다.

실화가 가진 생생함에 그들이 겪었을 법한 사건과 감정의 파고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합니다. 참담함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2017년 '촛불집회'라는 승리의 기쁨을 맛봤던 우리에게 30년 전 우리의 모습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역사의 주역은 위인들만이 아니고, 다수의 의지가 모여 결국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룹니다. 영화는 우리 삶의 주인은 결국 우리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장준환 감독은 여느 영화의 주연급 배우들을 소시민 캐릭터로 캐스팅해 인물과 선택 사이, 행간에 놓인 감정의 변화까지 따라가게 만듭니다.

주요인물인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외에도 설경구, 강동원, 여진구, 김의성, 문성근, 고창석, 조우진, 우현, 오달수 등이 스쳐 지나가는 인물 하나 하나를 스크린으로 불러냅니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장준환 감독은 결국 눈물을 터트립니다. "만들면서 여러번 봤습니다. 배우들은 처음 보니까 옆에서 많이 훌쩍여서 감정이 전이가돼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걸 자뻑이라고 하죠?"라며 겨우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동안의 어려움과 함께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사실 실제 역사를 영화화 하는 것은 늘 장단이 따릅니다. 우리는 올해 초 '군함도' 논란을 통해 위험성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987'은 그해 1월부터 6월까지 다수의 인물이 만들어낸 격동의 드라마를 중심으로 위트와 무게를 적절히 안배해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장 감독은 상업영화이지만 진심을 담았다고 강조합니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그 해를 담고 싶었습니다. 온 국민이 거리로 튀쳐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자각한 상태에서 쟁취해내죠. 두려움에 떨었지만 한 마디라도 내뱉어야 했던, 양심을 져버릴 수 없었던 1987년의 전국민이 주인공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사건은 직접적으로 얽혀있지는 않습니다. 장 감독은 "조화롭고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지만 갈등을 내재한 가상의 인물 연희(김태리)를 만들어 이한열과 연결 짓는 구조를 생각해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장준환 감독과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춘 김윤석은 시나리오 초고부터 완성까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에 참가했습니다.

"'탁 치니까 억'이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시 저도 대학생이었고 일간지 신문 헤드라인에 도배된 것을 목격했었지요. 30년 뒤 이 말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박종철 열사가 고등학교 선배임을 밝히면서 "박처장이라는 배역에 대해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 배역을 누군가는 연기해야 했기에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김윤석은 또 "현실이 더 영화같은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희극의 '재미'가 아닌 영화적 재미를 담아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한 줄 평 : 시대의 공기를 읽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상=신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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