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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도 학생도 '비트코인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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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리기식 투기 위험수위

"클릭 몇 번에 수십만원 버는데"…직장인·대학생도 가상화폐 광풍

독버섯 같은 유혹
"남들은 대박 쳤다는데 나만 지금껏 바보 된 기분"
직장인들 수시로 시세 확인…접속 금지령 내린 회사도

일확천금에 열광하는 한국
집 담보 대출받아 투자에…고교생·대학생까지 가세
경고 목소리 커지는데도 거래량 한국이 세계 3위



[ 성수영 기자 ]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가상화폐 투자열기가 이상 과열로 치닫고 있다. 직장과 학교에서 종일 컴퓨터 화면 속 호가창만 들여다보는 ‘코인 좀비’가 속출하고 있다.

29일 가상화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약 200만 명(중복 계산)의 신규 투자자가 가상화폐시장에 진입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회원만 134만 명으로 연초(33만 명)보다 100만 명 이상 늘었다.

외형 증가보다 더 주목받는 대목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올인’ 투자하는 위험천만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하루에 수천만원을 벌었다는 ‘인증 글’로 도배되고 있다. 부유층 자녀 사이에선 ‘비트코인 용돈벌이’가 연초부터 유행 중이고, 이른바 ‘흙수저’들도 ‘코인이 답’이라며 빚을 내 뛰어드는 양상이다.

또 대학가에서는 ‘제대 후 복학도 포기하고 전업투자자로 나섰다’는 식의 사연이 넘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10대들의 투자열기도 위험 수위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생은 “반 친구의 절반 이상이 투자하고 있다”며 “전업투자자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이상 투자열기는 한국을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국으로 급부상시켰다. 이더리움 클래식이라는 가상화폐는 한국시장 거래량 비중이 세계의 62%에 달한다. 1월 3조3778억원이던 빗썸의 거래대금은 이달 들어 40조원을 넘어섰다. 가상화폐 전문가인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잃기 전에 나만 빠져나오면 된다는 ‘폭탄 돌리기’와 비슷한 양상”이라고 우려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 대표는 지난주 ‘근무시간에 가상화폐 접속 금지령’을 내렸다. 근무시간에 가상화폐 거래소 창을 띄워놓고 한 시간에도 수백 번씩 시세를 확인하는 직원들이 늘어서다. 5000만원을 대출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대출금의 절반을 날린 직원이 생겨난 것도 금지령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이 회사 대표는 “한 시간 새 시세가 200% 등락하는 모습을 보고 건전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투자하지 못할 시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루 40만원 버는데…”

‘가상화폐 중독’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 문외한도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무작정 시장에 진입하고, 그렇게 몰려온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비트코인 좀비’를 양산하는 모양새다.

투자 성공 스토리가 회자하면서 직장 내 분위기도 술렁이고 있다. 한 대기업 마케팅부서의 A씨(33)는 “근무시간을 이용해 하루에 가상화폐 매매로만 40만원의 시세차익을 챙긴다”고 말했다. 그는 “일당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버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전업 투자자가 될까 하는 생각만 든다”고 덧붙였다. 중견 기업에 근무하는 최민형 씨(29)는 “사무실에 가상화폐 투자로 재미를 본 사람이 여럿인데 열심히 일하는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라며 “지금부터라도 투자할까 싶다”고 했다.

대학가도 심상치 않다. 연세대에 재학하다 군대를 갔다 온 B씨(24)는 “입대 전 우연한 계기로 구입한 비트코인이 대박이 나 있었다”며 “이번 학기 복학을 포기하고 투자에만 몰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풍’은 고교 교실까지 번졌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군(18)은 “가상화폐로 석 달 동안 1500만원을 벌었다”며 “우리 반의 절반은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들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당당하게 “전업 투자자를 직업으로 삼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금수저 ‘용돈벌이’ 흙수저 ‘인생역전’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제들 사이에서는 올초부터 ‘비트코인 용돈벌이’ 열풍이 불었다. 여윳돈 수천만원을 투자해 ‘대박’이 터지면 세금도 떼지 않고 고스란히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중견 기업의 2세 중 수억원을 벌었다는 무용담도 회자한다.

이른바 ‘흙수저’를 자처하는 2030도 “코인이 답이다”를 외치며 빚을 내 뛰어들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김성주 씨(24)는 이달 초 자취방 계약기간이 끝나자 고시원으로 옮긴 뒤 보증금 3000만원을 마이너 가상화폐에 ‘올인’했다. 김씨는 “쌓아놓은 것도 없고 공부한 것도 없지만 코인은 감각과 운만 있으면 ‘흙수저 탈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코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도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거품 붕괴에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자본과 정보가 약할수록 손해를 볼 확률이 크다고 경고한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투자액이 적으면 영세 가상화폐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세력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투자열기는 다른 나라보다 특별하다. 시가총액 규모가 작아 변동성이 심한 영세 가상화폐일수록 한국의 거래비중이 높다. 시가총액이 비트코인(184조원)의 20% 수준인 ‘이더리움 클래식’의 한국 거래량 비중은 61.56%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정신병리학적으로 ‘중독’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원장은 “주식 중독자들을 진료한 경험에 따르면 위험자산 투자 경험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 이 같은 투자에 더욱 빨리 중독된다”고 말했다.

거품 붕괴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빗썸 서버 다운 때 수억원을 날렸다는 ‘큰손’ 조모씨(47)는 “항의하기 위해 빗썸 본사로 달려갔는데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는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고 전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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