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각 가정마다 김장을 했거나 혹은 김장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필수 음식입니다. 가정에서 1년 동안 두고두고 꺼내먹을 김치를 담그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올해는 김장을 하는 소비자들의 한숨이 예년보다 좀 덜할 듯합니다. 배추 농사가 아주 잘 됐습니다. 이날(27일 기준)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배추의 평균 가격은 특품 10kg(약 4~6포기)이 6841원으로 최근 5년 같은 시기 평균 가격보다 20% 정도 쌉니다.
지난해 폭염과 우박 등 오락가락 날씨 속에서 고랭지 배추 가격이 일부 지역에서 포기 당 1만5000원까지 치솟은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배춧값이 비싸 김장을 포기하겠다'는 가정도 적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기온의 일교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데다 태풍 피해도 거의 없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0%가량 더 좋았던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작황이 아주 좋은 것이지요.
배추 풍년에 소비자들이 부담을 던 것과는 반대로 농가는 배추 가격이 뚝 떨어져 울상입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배추 가격이 급등한 것 때문에 배추 농가에서 재배 면적을 대폭 늘려 어느 때보다 공급량이 많아졌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겨울배추 재배면적은 지난해보다 약 13% 증가한 3924㏊입니다. 이에 따라 올 겨울배추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30% 많아진 33만t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올해 겨울배추 예상 평균 도매가격은 10㎏당 3500원으로 지난해 7960원보다 56% 하락할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배추 농사가 잘 돼도 농가 입장에선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떨 때는 배추 1포기가 1만원을 훌쩍 넘기다가 또 어떨 때는 동전 몇 개로 살 수 있는 가격까지 곤두박질치는 이 '가격의 불확실성'이 배추 농사의 가장 어려움이라고 농가는 정부에 토로하고 있습니다.
배추 1포기 가격은 왜 이렇게 널을 뛸까요? 그것은 배추가 수요와 공급 모든 측면에서 가격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의 탄력성이란 가격 변화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를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 농가(공급자) 입장에선 배추의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내일 바로 생산량을 늘릴 수가 없습니다. 배추는 씨를 뿌려 키운 모종을 옮겨 심고 출하하기까지 약 90일이 걸리는 농작물이기 때문입니다. 공산품처럼 바로바로 찍어내는(탄력적) 성격의 재화가 아닙니다.
소비자(수요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추의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우리는 식탁 위에 있는 김치를 두 점씩 집어먹지 않습니다. 김치를 소비하는 양이 배추 가격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일정하기 때문에 이 역시 비탄력적입니다.
만약 올해 배추 가격이 크게 올라 농가 입장에서 금전적으로 큰 소득을 올리게 된다면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재배 면적을 늘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이득을 좇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배추의 이런 특성 때문에 약간의 공급 부족에도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량이 약간의 과잉이어도 가격이 폭락하는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매년 폭락과 폭등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배추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정부의 배추 저장사업 확대, 절임배추 예약제 시행 등을 진행할 것을 건의하고 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진척이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배추 1포기의 적정 소비자 가격은 얼마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배추가 생산돼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유통과정을 살펴야 합니다.
배추는 산지유통인이 생산자(농가)로부터 밭떼기로 구입하여 도매시장, 대형유통업체, 대량수요처 등으로 판매하는 것이 주된 경로입니다. '포전거래'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국내 배추 유통의 85%가량을 차지합니다.
포전거래란 생산자가 배추 씨 파종 직전 또는 파종 후 수확하기 전에 배추가 밭에 심겨진 채로 그 밭 전체의 배추를 통째로 거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농가는 보통 배추를 40일 정도 재배해 산지유통인에게 팔고 이들이 50일 정도 더 재배해 가락시장 같은 도매시장,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넘기고 소비자들이 이를 구매하게 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2010년 기준) 배추 1포기당 생산원가는 약 700~800원, 산지작업비가 5t 차량 당 45만~50만원, 운송비도 거리에 따라 40만~60만원까지 소요돼 포기 당 최소 1200~1300원이 돼야 농가 입장에선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보통 배추를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또 이들이 가져가는 유통비(포장가공, 보관, 운송, 하역, 청소, 관리, 인건 등)가 추가됩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배추는 출하 단계에서 물류비가 62~67%, 소매 단계에서 30~34%를 차지하므로 소매상인들은 2300~2400원에는 판매해야 합니다.
다만 이는 날씨 변화 같은 자연적 요소들을 전혀 고려한 가격이 아닌 데다 배추가 다른 작물보다 가치에 비해 부피가 크고 중량이 무거워 운송비가 상대적으로 높게 발생한다는 걸 고려하면 포기당 가격은 최소 3000원은 되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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