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위기에 몰린 알뜰폰
40여개사 경쟁도 힘겨운데 '정책 리스크' 직격탄
통신 3사와 요금차이 별로 안나 가입자 이탈
선두업체들도 적자…중견업체는 연내 도산설
2018년 '보편요금제' 도입 땐 경영난 심화 우려
[ 이정호 기자 ]
“통신 시장에 경쟁 원리를 도입하겠다던 정부 말을 믿은 게 잘못이죠.”(중소 알뜰폰 회사 임원)
국내 알뜰폰업계가 가입자 감소, 수익성 악화, 정책 불확실성 등 ‘3중고(三重苦)’에 허덕이고 있다. 통신 3사의 시장 과점 구도를 깨고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게 알뜰폰 도입 취지였지만, 영세 업체들의 난립과 정책 지원 부족 등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통신요금 인하는 알뜰폰의 핵심 무기인 요금경쟁력마저 잠식하고 있다. 정부가 ‘통신비 복지’를 명분으로 인위적으로 요금 인하를 유도해왔지만, 오히려 통신 시장의 약자인 알뜰폰을 고사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알뜰폰시장 성장 정체
국내 알뜰폰 사업자는 4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알뜰폰협회)에 속한 20개 회원사가 전체 알뜰폰 사업 매출(작년 8380억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9월 기준 알뜰폰 가입자 수는 739만 명으로, 국내 전체 이동통신 시장의 11.7%를 점하고 있다.
1위 사업자인 CJ헬로와 통신 3사 자회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자들은 모두 중소 사업자다. 자본금 5억원(SK텔레콤 망 사용 업체는 30억원)만 있으면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 10만 명 수준이 알뜰폰 사업의 손익분기점”이라며 “상위 20위권 정도에 들어야 한 해 1억원이라도 흑자를 낸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흑자 규모를 키우려면 가입자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해야 하지만 알뜰폰 가입자 수는 올해 3월 700만 명을 돌파한 뒤 증가세(9월 736만 명)가 정체돼 있다. 알뜰폰협회 관계자는 “알뜰폰 주력 상품인 선불요금제와 2G(2세대) 3G(3세대) 요금제 가입자는 이미 정점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며 “LTE(4세대 이동통신) 요금제 가입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통신 3사에 지급해야 하는 망 사용대가가 너무 높아 대부분 사업자가 LTE 요금제 출시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보편요금제는 핵폭탄”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된 통신비 인하 대책은 알뜰폰업계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통신 3사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선택약정(요금할인) 할인율 상향조정(20%→25%) 시행과 보편요금제 도입 추진이 대표적이다. 기존 통신 3사 가입자들이 사용하는 요금제가 싸지면 알뜰폰업계는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갈아탈 생각을 하던 잠재 고객을 잃게 되는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알뜰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알뜰폰 사업자의 가입자당 월평균 매출(ARPU)은 1만6000원(후불요금제 기준)이다. 대부분의 알뜰폰 가입자가 선택한 요금제가 1만5000~2만원 선이라는 얘기다. 이들 상당수는 저소득층이지만 홈플러스처럼 알뜰폰 사업을 접는 업체가 늘어나면 저소득층의 선택폭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 등으로 통신 3사 요금이 내려갔지만 1만~3만원대 요금 상품에서는 여전히 알뜰폰의 요금이 저렴하다. 정부의 인위적 시장 개입이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보편요금제로 위기감 고조
정부가 내년부터 보편요금제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보편요금제는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 혜택을 현재보다 1만원가량 낮은 월 2만원 요금에 주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한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보편요금제는 알뜰폰의 주력 시장을 전멸시키는 핵폭탄”이라며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오히려 약자인 우리가 폭탄을 맞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알뜰폰 사업자는 통신 3사의 통신망을 빌려쓰는 대가로 가입자로부터 받는 요금 수익의 40~55%(LTE 요금제 기준)를 망 임대 계약을 맺은 통신사에 지급한다. 정부는 1년에 한 번 알뜰폰 사업자들의 위임을 받아 망 도매제공 의무사업자인 SK텔레콤과 협상을 벌여 망 임대료(망 도매대가) 수준을 조정한다.
하지만 정부는 협상권만 있을 뿐 가이드라인 제시 등 조정 권한은 없다. 민간 기업 간 사적계약 영역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게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다. 통신비 인하 중장기 정책을 논의하는 통신비 정책협의회(사회적 논의기구)에선 알뜰폰 지원 정책이 완전자급제, 보편요금제에 밀려 있다.
알뜰폰협회 관계자는 “알뜰폰업계가 생존하기 위해선 보편요금제 도입을 1~2년 유예하고 정부가 자체 분석을 통해 망 도매대가 수준을 결정하는 조정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기업의 환율관리 필수 아이템! 실시간 환율/금융서비스 한경Money
한경닷컴, 기업 대상 '2018년 환율전망 및 금리전망 세미나' 오는 12월 12일 KDB산업은행과 공동 주최!
[ 무료 주식 카톡방 ] 국내 최초, 카톡방 신청자수 35만명 돌파 < 업계 최대 카톡방 > --> 카톡방 입장하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