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혁신을 추동하는 기술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유난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사회의 근원적인 변혁에 대한 예측은 경제의 디지털화와 최근의 스마트 기술을 선제적으로 수용한 우리나라에서 더 기대가 클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 용어가 유행하는 현상은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정체되고 있는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의 반영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란 시대사적이고 글로벌한 변화로부터 사회혁신의 동력을 찾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학자들이 동의하는 경제사적 혁명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변화한 1차 농업혁명, 화학비료를 사용해 식량문제를 해결한 2차 농업혁명, 그리고 노동에 기계를 결합한 산업혁명이다. 경제사적 혁명은 사후적으로 인간의 삶의 변화 폭에 의해 정의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금 또 다른 경제사적 혁명에 대한 예언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몇 가지 존재한다.
시장이 선택하는 건 '디지털 기술'
<도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행한 디지털 경제 보고서 중 미국 벤처캐피털의 투자동향 통계다. 2000년을 전후한 닷컴 열풍은 구글, 아마존 같은 초거대기업을 탄생시켰다. 중국의 텐센트와 바이두, 한국의 네이버와 엔씨소프트 등 초우량기업의 탄생 계기가 됐다.
왜 이렇듯 거품으로까지 인식되는 투자 열풍이 불었을까. 이는 월드와이드웹(www)이 모든 인류가 사용할 보편적 기술이며, 그것이 갖고 있는 경제적 거래를 변화시키는 본질적 가치 때문이다. <도표>를 보면 닷컴 거품이 꺼지고 나서 미국의 벤처투자는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2015년을 전후해 눈에 띄는 봉우리가 솟아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우버 에어비앤비 등과 중국의 샤오미 루컴, 한국의 쿠팡 엘로우모바일 등 소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을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투자 열풍인 것이다.
혁신형 벤처에 대한 투자열풍은 새로운 기술에 의한 큰 기회 없이는 불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큰 기회를 만드는 새로운 기술은 무엇일까. 찰스 슈와브는 저서 《4차 산업혁명》에서 혁신을 추동할 신기술로 인공지능, 3D프린터, 유전자 기술, 신물질 등을 꼽았다. 하지만 <도표>를 보면 닷컴 때와 최근의 벤처투자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차지하는 투자 비중이 70%대로,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후보로 시장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유니콘 기업들을 분석하면 특히 인공지능과 스마트 기술로 좁혀진다.
인류는 1,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육체노동을 돕는 기계를 생산활동에 투입해 산업혁명을 고도화해 왔다. 증기기관은 가축과 노예 대신에 기계를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2차 산업혁명은 그 기계에 전기(電氣)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공급해 대량생산과 규모의 경제를 가능케 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3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기계들은 정신적, 지적 노동을 돕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ICT라 부르고 디지털 기술이라고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이 정신노동의 기계가 고도화화는 동시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기계가 결합되는 변화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기계가 인공지능을 품고 있어서 인간과 기계의 역할 분담이 재정립되는 변화다.
OECD의 이 통계와 다른 벤처투자 자료로부터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최근의 벤처 투자를 보면 닷컴 때와 비교해서 투자금액이 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그렇게 분명하고 광범위한 새로운 기회가 아닐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런 투자 열풍이 정리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모양새다.
둘째, 투자의 70% 이상이 디지털 기술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기술들은 디지털 기술만큼 보편적 기술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기회의 창 문제다. 혁신형 벤처투자는 아무 때나 정부가 진흥한다고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다. 혁신형 스타트업은 새로운 경쟁수단이 있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기회의 문'을 닫아걸지 말아야
그 새로운 기회의 문은 기술의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 열린다. 새로운 범용기술의 출현이 그런 기회를 만든다. 지금까지의 벤처투자 데이터가 보여주는 4차 산업혁명은 사무실의 정보기기와 공장의 일반기계가 결합되는 변화가 중심축이다. 두뇌와 육체노동을 동시에 도와주는 새로운 기계의 시대에 대비하는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변화의 수용성이 너무 떨어져서 기회의 창을 구경만 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우버는 스마트 기술과 인공지능으로 택시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택시 앱에서 승차 위치를 막고 승차 거부를 못하게 기존질서를 강요하는 앱을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의 열기가 뜨거운 것은 스스로 개혁을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돌파해 보자는 절망감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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