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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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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짧은 중국에도 추월당한 한국 금융 경쟁력
관치·정치 간섭에 노조 입김에도 휘둘리는 탓
온갖 규제 철폐해 은행을 자유롭게 놔둬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



한국의 금융산업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관치로 허약해진 금융산업에 정치가 끼어들어 망가뜨려 놓더니 이제 노조와 시민단체까지 금융회사 경영에 개입하려고 해서다. 국내 4대 금융회사 중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인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은 정부 지분이 거의 없는 순수 민간회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이라는 ‘왕좌의 게임’이 끝날 때마다 각 영주를 임명하듯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등 관치금융, 정치금융에 시달려 왔다. 급기야 새 정부 들어서는 국민은행 노조가 사외이사 자리를 요구하는 등 노조와 시민단체가 금융회사 경영에 개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금 한국 금융산업은 마치 주인 없는 산에 너도나도 마구 들어가 산림을 훼손하고 있는 형국이다. 벌거숭이 산이 되듯 금융산업이 피폐해질 것 같다.

현대 금융 역사는 한국이 중국에 비해 훨씬 오래됐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한 때는 1978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한 것은 8년 후인 1986년이다. 주주제 상업은행의 설립을 허용하면서 시장경제 금융체계가 형성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렇게 중국 금융의 역사는 우리의 절반인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은 중국이 훨씬 앞서 있다. 세계 20대 은행에 중국 은행은 4개나 들어 있다. 한국 은행은 하나도 없다. 물론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2016년 11조1991억달러)이 한국 GDP(1조4110억달러)보다 10배 이상 많기 때문에 은행 규모가 우리보다 더 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한국보다 GDP가 적은 스페인(1조2320억달러) 은행은 20위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측면에서도 한국의 금융은 중국에 한참 뒤져 있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경쟁력 순위는 138개국 중 28위이고 한국은 26위다. 전체 경쟁력 순위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앞선다. 그런데 금융 경쟁력은 중국이 56위이고 한국은 80위로 한참 아래다. 이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을 결합해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핀테크산업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ICT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글로벌 상위 50대 핀테크 기업에 중국 기업이 8개나 들어 있고, 세계 1위도 중국의 앤트파이낸셜이다. 상위 10대 핀테크 기업 중 5개가 중국 기업이다. 한국은 비바리퍼블리카가 35위에 랭크돼 있을 뿐이다.

한국의 금융이 이렇게 낙후한 것은 금융산업이 정치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구조상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표면상으로 보면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은 각 금융지주회사가 100%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금융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관리한다. 이런 묘한 구조를 통해 정부가 사실상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게다가 각종 규제를 통해 금융회사의 온갖 경영에 간섭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리 인상을 하지 못하도록 은행을 강제한 게 단적인 예다. 이런 관치금융 아래에서 금융이 정치에 휘둘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발생한 우리은행의 채용 비리는 이런 구조의 산물이다. CEO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면 그 다음 은행 내에서의 인사 역시 대부분 개인 능력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해 이뤄진다. 능력에 따른 인사가 어려운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금융감독원장이 “창의적 사고로 무장한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당부해도 소용없다. 정말로 창의성과 능력 있는 인재가 양성되기를 원한다면 관치금융을 없애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관치금융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건전성 규제를 제외한 대부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꼭 필요한 규제가 있다면 지금의 적극적 규제체계가 아니라 소극적 규제체계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회사들이 관치와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환경이 조성돼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국제 경쟁력이 생긴다. 그래야 제조업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출현할 수 있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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