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프랑스는 영국보다 30년가량 늦은 19세기 초 산업혁명을 시작했다. 프랑스 기업가들은 영국에 뒤질세라 공장을 세우고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공장 종업원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이들은 농번기에는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야 했다. 기업가는 안정적인 종업원 확보가 우선이었다. 이들이 농촌으로 가지 않도록 온갖 설득을 해야 했다. 기업가들이 내세운 조건은 모든 직원의 고용 보장이었다. 이를 프랑스 산업혁명의 본질로 보는 시각도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린 목축국가 영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기업가가 인력을 끌어모으기 위한 시장이 작동했다. 하지만 차츰 프랑스의 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면서 기업가와 종업원의 관계는 역전됐다. 그때부터 프랑스에 노조가 생겨났고 정규 고용 계약도 본격화됐다.
일본 경제 회복에 정규직 늘어
최근 일본에서 정규직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9월 기준 정사원이 3483만 명으로, 전월 대비 76만 명 늘었다. 정사원의 유효구인배율도 1.02배라고 한다. 1배가 넘으면 구직보다 구인이 많다는 의미다. 올 7월부터 이 배율이 1배 이상으로 늘었다.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2년간 57만 명이 줄어든 것과 크게 비교된다. 헤이세이(平成) 29년 동안 비정규직이 사회문제화됐던 일본이다. ‘프리타’나 ‘바이토’란 용어가 시대를 이끌었다.
물론 경기 회복에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기업이 이제 정사원 채용으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제조업에서 정사원이 증가한 것은 주목된다. 일부에선 아베노믹스 효과라고 평가하지만 정작 인적 자원에 대한 기업의 확보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최근 스페인이나 아일랜드 등에서도 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로 골치 아팠던 나라들이다. 경제가 살아나고 인력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경험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있는 것이다.
韓, 공공 정규직 전환 부작용 우려
경제학에서 알프레드 마셜이 제시한 ‘효율임금(efficiency wage)’ 이론에 적합한 사례들이다. 임금 인상이 경영난을 극복하고 기업을 살린다는 논리다. 애덤 스미스도 “금 세공인들이 금을 훔쳐가지 않도록 이들에게 두둑한 임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상황과 업종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쓰는 것은 기업가의 의사결정이다. 구조조정과 신규 채용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도 기업에서는 다반사다. 이런 게 기업의 활력이요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이를 방관하는 잘못된 고용 관행을 공공부문부터 바로잡겠다는 의지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물론 공기업은 경제학적 효율임금 효과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지만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는 게 과연 옳은지, 비용 부담에 대해 납세자인 국민 합의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자칫 공공 노조 힘을 키워 오히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욱 약화시키는 게 아닌지도 우려된다.
지금 일본 정부 규제개혁회의는 유연성이 높은 노동시장 만들기를 강력 주문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노동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정착과 안주를 중시한 농업국가였다. 이들이 변하려 하고 있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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