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쿠바 등 금융거래 혐의
2014년 10조원 '벌금폭탄'
뉴욕 금융당국 감독 강화
감사시스템 재구축 잰걸음
[ 윤희은 기자 ] 미국 뉴욕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을 비롯한 아시아권 은행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감사체계 재구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2014년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처럼 10조원에 가까운 벌금을 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내 은행들에 비상이 걸렸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신한·국민·KEB하나·농협·기업 등 뉴욕에 지점을 둔 국내 은행들은 올 들어 감사시스템 재구축을 위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완료까지 10억원 이상의 비용을 예상하고 있다”며 “대다수 국내 은행이 뉴욕에 1개가량의 지점만 두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지나친 비용 투입이지만, 그렇다고 당국 지침을 무시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 금융당국의 감사체계 재구축 요구는 은행이 이라크·시리아·이란 등의 테러국가에 자금을 유통하는 ‘창구’ 역할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계 은행은 이 같은 지침을 받아들여 감사체계 개선을 대부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금융당국의 주요 요구 사항에는 감사와 관련한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 미국 금융회사 출신 감사담당관 배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이번 당국 지침에 긴장하는 것은 ‘제2의 BNP파리바 사태’를 우려해서다. 2014년 BNP파리바는 미국 금융당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과 수단, 쿠바 등의 국가와 300억달러 규모의 금융거래를 한 혐의로 89억달러의 벌금을 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역시 이란 법인들과 10년간 거래해온 혐의로 미국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서 2012년 3억4000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국내 은행이 테러자금 유통과 관련해 벌금을 청구받은 일은 없지만 이와 관련한 크고 작은 제재를 받은 전례는 있다. 2012년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이 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CBI)의 원화 결제계좌에서 위장거래로 거액이 빠져나간 정황이 발견돼 미국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농협은행은 올해 초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내부 시스템 미흡과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으로부터 시정 조치를 받았다.
은행 관계자는 “감사체계 재구축은 3~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길고 번거로운 작업”이라며 “그래도 혹시 모를 거액의 벌금을 무는 것보다 대비해 놓는 것이 낫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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