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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칸트의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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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


안단테 칸타빌레. 가을의 서울 양재천은 ‘천천히, 노래하듯이’ 흐른다. 서두르지 않는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발걸음은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곡을 닮는다. ‘아시아 경관상’을 받은 양재천 서초구 구간의 호젓한 풍경을 눈에 담다 보면 달리던 사람은 걷고, 걷던 사람은 멈추고, 멈춘 사람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 가을 양재천에서는 서 있는 사람도 풍경이 된다.

가을이 사색의 계절이라면 양재천은 사색의 공간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바쁜 마음이 수그러들고, 정신없이 달려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 산책자들을 위해 서초구는 최근 사색의 길을 마련했다. 바로 영동1교에서 하류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칸트의 산책길’이다.

칸트의 산책길에 들어서려면 먼저 ‘사색의 문’을 지나야 한다. 입구의 묵직한 철제문에서 호흡을 고른 뒤 목조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벤치’에 앉은 이마누엘 칸트 동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벤치 좌우에는 ‘행복의 원칙’ 등 칸트의 명언이 새겨진 글판이 잠시 생각을 붙잡는다. 오밀조밀 깔린 납작 돌들을 밟으며 걷다 보면 ‘생각의자’와 ‘명상데크’도 만난다. 드문드문 서 있는 독서 조명등 아래에서는 가을밤 책과 함께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칸트가 매일 걸었던 쾨니히스베르크 산책로의 축소판이 양재천에 들어선 셈이다.

칸트의 산책길이 조성된 곳은 원래 하천 퇴적물이 쌓여 생긴 작은 섬이다. 그간 수풀만 무성한 채 방치됐었는데, 인문학적 상상력을 입히니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인문학이란 ‘사람의 마음이 빚어내는 무늬’라고도 한다. 삭막한 공간도 마음의 무늬가 입혀지면 다정한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콘크리트만으로는 낙원을 지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서초구에서는 인문학의 힘을 빌려 무뚝뚝한 도시 공간에 표정을 입혀 나간다. 구청 로비 벤치에는 빈센트 반 고흐 동상이 앉아 있다. 방배1동 공영주차장 포토존에는 어린 왕자가 기다리고 있다. 덤덤한 얼굴로 오가던 주민들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만나는 발랄한 상상력에 환한 표정을 짓곤 한다. 그 작은 미소가 세상을 좀 더 훈훈한 곳으로 만들어 간다.

칸트는 ‘행복의 원칙’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산책에는 이 모든 것이 축복처럼 담겨 있다. 혼자 걸으면 건강이, 둘이 걸으면 사랑이, 셋이 걸으면 우정이, 함께 걸으면 희망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침 나뭇잎이 시나브로 떨어지는 계절이다. 이 가을에 칸트가 돼 걸어보면 어떨까. 다 함께 천천히, 노래하듯이!

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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