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부터 주택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인센티브를 통해 민간 건설사의 후분양제를 유도하는 내용의 ‘후분양제 로드맵’을 마련하겠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공동주택 후분양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엇갈리고 있다.
후분양제는 아파트를 거의 다 지은 뒤 분양하는 제도다. 80% 정도 공정이 이뤄졌을때 분양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민간 아파트들은 착공 시점에 분양하고 있다. 후분양제 도입이 처음 검토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2004년 후분양제 활성화 방안 로드맵을 마련했지만 반대 여론에 막혀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금융위기와 주택경기 침체로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가 지난해부터 부동산시장 과열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후분양제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수억원대 상품을 모델하우스만 보여주고 분양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품질을 가늠할 수 없어서다. 공사 도중 건설사가 부도날 경우 소비자 피해도 크다. 구입 후 입주 시기도 최대한 당길 수 있다. 브랜드가 약한 중소 건설업체도 아파트 품질을 바탕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투기 수요를 걷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찬성 측은 설명한다. 분양권에 많게는 수억원의 웃돈이 붙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투기 수요가 분양시장에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면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후분양제가 실수요자에게 오히려 손해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으로 나눠 분양대금을 내지만 후분양제에선 전체 분양대금을 한꺼번에 치러야 하는 까닭이다. 분양가격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선분양제에서는 계약자로부터 받는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건설비용을 조달한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건설비를 금융회사로부터 빌려야 한다. 이자 비용은 그대로 분양가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 리스크가 커져 신규 공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반대 측 주장이다.
[찬성] 소비자 위험부담 줄고 선택권 강화… 실수요자 위주 주택공급 정착될 것
중소건설사, 브랜드 아닌 품질로 승부 볼 기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공아파트에 대해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의 ‘후분양제 로드맵’이 폐지된 지 10년 만이다.
선분양제는 정부가 주택난 해소를 위해 건설사의 자금난을 덜어줘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자 1977년부터 도입됐다. 소비자는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로 주택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양가 자율화 이후에도 선분양제만 유지되면서 소비자 피해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에 공급된 부영아파트에서 하자 9만여 건 발생, 공무원까지 관련된 세종시에서의 광범위한 불법 전매 등 점점 심각해지는 선분양 폐해에 시민과 정치권 등의 후분양 요구도 커지고 있다.
국토부 결정은 주택시장 정상화를 원하는 국민 요구에 부합한다. 늦어진 만큼 지금이라도 즉각 시행해 소비자의 재산권과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도 10년 전부터 하고 있고, 박상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도 국토부가 결정하면 당장 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공공 부문은 더 미룰 이유가 없다.
건설업계 등은 주택 가격 상승, 주택 공급 축소, 중소 건설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후분양제를 반대하고 있다. 선분양제에서 소비자로부터 분양대금을 미리 받아 사업을 추진했지만 후분양하면 건설사가 스스로 사업비를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이자비용이 증가하고 주택 가격이 인상된다는 주장이다.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연구보고서에서 후분양제가 의무화될 경우 이자비용이 늘어나 분양가가 평균 7.8%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LH가 후분양한 아파트 사업비를 조사한 결과 이자비용은 분양가 대비 0.57%에 그쳐 후분양에 따른 분양가 상승은 미미했다. 김 장관도 HUG 연구에서 분양가 상승 원인이 되는 이자비용에 대한 금리를 지나치게 많이 적용했다고 인정했다.
건설업계는 선분양제 도입 시 건설사의 사업 리스크가 증가해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분양은 소비자가 사업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무분별하게 공급할 수 있었고 미분양 발생 피해도 수분양자들에게 전가됐다. 후분양제를 적용하면 철저한 사업타당성 검토에 근거해 사업이 신중하게 추진될 수밖에 없다. 투기적 가수요를 겨냥한 공급은 줄어들겠지만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은 꾸준하게 이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분양은 경쟁력 있는 중소 건설사에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다. 선분양제에서는 소비자가 아파트 품질을 보고 주택 구매를 결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중소 건설사보다는 대형 건설사 브랜드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후분양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아파트 품질을 평가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중소 건설사들이 품질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자금 없고 기술 없는 건설사들이 소비자의 분양대금에 기대 쉽게 사업 추진을 해온 선분양 특혜는 소비자 피해 방지는 물론 건설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사라져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계는 자금난 해소를 위해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면서 분양가 자율화가 이뤄지면 시장 상황에 따라 스스로 후분양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에도 20년째 약속 이행을 미루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행하고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길 바란다.
[반대] 시장예측 어려워 공급 축소 우려… 실수요자도 분양대금 조달에 부담
금리부담 커져 신용도 낮은 중소업체 큰 타격
철저한 준비 없이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후분양제로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을 불러올 수 있다. 도입하는 시점부터 2∼3년간은 ‘분양절벽’이 나타날 수 있고, 이 기간 동안 주택 가격은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른 위험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후분양제 구조에서 늘어나는 금융비용 부담의 역효과도 크다. 공급자인 건설업체는 2∼3년 뒤 주택경기를 예측해 신규 건설 물량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 주택경기 예측의 어려움과 미분양 우려로 신규 건설 물량을 매우 소극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결국 주택 공급 부족은 주택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그 부담은 무주택자에게 돌아간다.
후분양제 구조에서 건설업체에 전가되는 금융비용의 역효과도 크다. 건설업체는 늘어나는 금융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할 것이다. 특히 금리 부담과 위험이 증가하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 건설업체는 사업이 어려워진다. 현재 신규 주택 공급량의 약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 건설업체가 빠지고 이 같은 비용을 견딜 수 있는 대형 업체 위주로 주택시장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 주택 공급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의 주택 선택권이 줄어들고 부담은 커지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대형 건설업체는 후분양으로도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 건설업체는 신용도가 낮아 높은 금리 부담과 위험 증가로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소비자의 주택 선택권 축소와 부담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후분양제는 분양권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한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이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선분양제 아래에서도 분양권 전매제한을 통해 투기 수요를 차단할 수 있다. 오히려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건축공정이 80% 끝난 뒤 분양하기 때문에 계약금부터 잔금까지 모든 분양대금을 단기간(약 6개월)에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결국 입주하지 못하는 가구가 늘어나게 되고 입주 시점에서 전매 물량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후분양제 장점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해소 역시 현실과 차이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분양이나 후분양이나 부채의 양과 조달 방법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분양제에서는 선분양 때보다 늘어난 분양자금을 단기간에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고 입주 지연 등 주거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주택시장의 혼란과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중심 시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후분양제를 성급하게 도입했다가 자칫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전히 주택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 상태에서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수급 불균형과 이에 따른 영향으로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간 빈부 격차는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대안적 주택 공급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택 공급 기반만 붕괴시킬 수 있다.
선분양이든 후분양이든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선분양 시 소비자 부담의 일부를 공급자가 부담하고, 후분양 때는 공급자 부담의 일부를 소비자가 부담하는 방향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후분양에 따른 공급자 부담은 정부의 금융 및 조세 지원으로 완화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