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앙은행장’으로 불리는 미 중앙은행(Fed)의 차기 수장 지명이 임박했습니다. 후보는 다섯명에서 세 명으로, 오늘은 두 사람으로 다시 좁혀졌습니다.
임명권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공화당 소속 상원 52명 대부분이 참석했다고 하는군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의원들에게 “테일러가 좋은가, 파월이 좋은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테일러는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이고, 파월은 제롬 파월 현 Fed이사 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호하는 후보 이름에 손을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의원들의 손이 누구에게 더 쏠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이크 라운즈 의원(사우스다코타)은 “대부분 의원들은 그냥 웃을 뿐 손을 드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차기 Fed 의장은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후 상원 인준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과반 찬성으로 결정되고, 공화당 의원이 52명이기 때문에 사실 이 자리에서 선호도가 갈렸다면 차기 의장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의원들은 변덕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결정을 못내려서인지 선뜻 손을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워싱턴에서는 재미있는 분석이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의중을 굳힌 상태에서 여기저기 의중을 떠보면서 흥행몰이를 한다는 애기입니다. 그는 최근 Fed 의장 인선을 놓고 백악관 보좌관들, 각료들, 친구들, 기업인들에게 수없이 질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Fed 차기 의장 인선과 관련해 참고가 될 만한 일이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초 국무부 장관 선임때 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끝까지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이름을 후보로 거론했습니다. 롬니는 대선때 트럼프 대통령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트럼프는 그를 후보로 올려 포용력을 발휘하는 듯 하다가 막판에 완전 의외의 인물(렉스 틸러슨 엑슨모빌 회장)을 낙점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롬니가 한자리 할까 기대를 걸고 트럼프 주위를 돌다가 ×망신당했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지금은 쫓겨났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라인스 프리버스는 트럼프가 개혁대상으로 삼는 공화당 주류에 속한 인물인데다 연륜이 짧다는 핸디캡때문에 캠프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 백악관 2인자의 자리를 꿰찾습니다.
테일러 교수는 통화정책에서 ‘강경 매파’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2016년 초 샌프란시스코 전미경제학회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났을때 “그동안 금리를 왜 안올렸는지 모르겠다. Fed의 직무유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만든 테일러준칙에 따르면 이미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겁니다.
저금리와 재정투자로 경기부양을 꾀하는 트럼프로서는 Fed의장으로 지명하기에 참 부담스러운 카드입니다. 테일러 교수로서도 트럼프 낙점을 받고 금리를 안올리거나 내년 중간선거까지 완만하게 올리면 그간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번복하는 결과가 됩니다. 더구나 테일러 교수는 2012년 대선때 롬니 전 주지사의 캠프에서 활동한 경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래 저래 지명 가능성은 떨어지는게 사실입니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테일러 카드는 진작에 후보 리스트에서 사라졌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궁금하다”고 말합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사적으로 가까운 언론 재벌 루퍼드 머독 회장이 테일러 교수와 케빈 워시 Fed 전 이사를 추천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차기 Fed 의장 지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출발(12월3일) 전 발표될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길어야 일주일 후 입니다. 테일러 교수가 롬니 전 주지사의 전철을 밟을 지, 프리버스 처럼 ‘의외의’ 간택을 받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