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전략 등 로드맵 제시하고
관료의 규제조작 행태 차단하며
규제 순응비용 줄이는 방식이어야
전영평 < 대구대 명예교수·행정학 >
정권마다 규제개혁을 ‘경제살리기 핵심정책’으로 채택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첫째는 30여 년째 엇비슷한 규제개혁 정책이 되풀이되면서 ‘규제완화 피로현상’이 나타난 측면이 있다. 과거 정권이 ‘손톱 밑 가시’ 같은 지엽적 규제에 집착하면서 고용, 노동, 세제, 입지투자 등의 분야에서 기업 투자를 해외로 내모는 ‘염통 밑 고름’ 규제에는 손을 대지 못한 것도 큰 이유다. 일례로 수도권 공장총량제 같은 근본적 규제는 지방의 반발로 인해 어느 정권도 손을 대지 못했다. 둘째는 규제총량제, 규제비용분석 등과 같은 신기법을 도입했지만 규제전담기구, 규제법령의 층위, 규제과정, 규제분석 등의 한계로 인해 규제개혁의 내용이 부실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럼 향후 규제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규제과정에서의 관료주의를 혁파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규제개혁의 대상을 찾아 헤맬 때가 아니라 ‘왜 규제개혁 정책이 잘 작동하지 않는가’에 주목할 때다. 규제정책의 집행과정에서 관료들의 행태는 규제개혁의 성과를 좌우할 수 있다. 규제재량권, 해석권, 단속권 등 직권을 활용한 규제조작 행태를 제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독일에서는 규제개혁 성과를 높이기 위해 ‘관료주의 철폐 사무국’을 두고 있다.
둘째, 난마처럼 얽힌 각종 규제법령을 통합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법령은 규제로 구성돼 있다. 수천 개가 넘는 법령은 피(被)규제자에게 중복된 의무, 불필요한 부담을 주고 있으며 해마다 생산되는 각종 법령은 또다시 새로운 규제와 의무를 만들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정비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이 우리에게는 없다. 유명무실한 규제개혁위원회를 혁신해 명실상부한 규제법령정비사무국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업 등 피규제자의 순응비용을 절감시켜 주는 규제방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과거 국가주도 산업별 규제개혁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고 경제발전, 기술개발, 소비자 효용 증대 등을 가져다 줬다. 이 과정에서 간과된 것이 규제순응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순응비용’과 순응을 확보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불필요한 규제행정비용’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이를 시정해 막대한 금액의 순응비용과 행정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넷째, 규제개혁의 실질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통계 및 데이터 처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규제행정을 위해 사용하는 인력, 재정, 조직관리 비용은 물론 피규제자가 부담하는 비용을 정확하게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후 규제개혁을 통해 절감되는 비용과 효과를 조사해 규제개혁의 성과를 공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독일에서는 이를 실행하는 시스템과 정부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다섯째, 규제개혁의 비전과 전략체계, 실행과제, 전담조직 등과 관련한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자신이 추구하는 규제개혁이 어떤 비전과 가치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자 하는 것인가에 대해 더 신속하게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 급하게 출범한 정부이긴 하지만 국가개혁, 정부개혁, 시장개혁, 세계화의 큰 틀 속에서 어떤 가치와 어떤 전략체계로 규제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가에 대한 로드맵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규제개혁은 전시적, 과시적 정책이 돼서는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규제완화뿐만 아니라 필요시 규제강화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산업육성, 시장진입,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필요하지만 국민안전, 보건위생, 환경, 안전 등의 분야에서는 규제강화가 규제개혁의 핵심 사항이 된다. 외환위기, 신용불량 사태, 부동산 투기, 세월호 사고, 가습기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느슨한 규제이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전영평 < 대구대 명예교수·행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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