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13곳, 차고지 21곳 건설 줄줄이 사업 취소·보류
각종 규제·보조금 축소도 '걸림돌'
화물차 졸음운전 사고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화물차 운전자를 위한 휴게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차 휴게소, 공영차고지 등 물류 관련 시설이 사회적 혐오시설로 인식돼 지역 주민들의 신규 건설을 반대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2014년부터 관련 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줄이면서 지자체들이 사업 추진을 꺼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화물차 휴게소 27곳 불과
지난 1월 국토교통부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사업용 화물자동차 운전자는 4시간 연속 운전 시 30분 이상 휴게 시간을 의무적으로 갖도록 했다. 하지만 44만 영업용 화물차 운전자가 편히 쉴만한 휴게소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화물차 전용 휴게소는 전국에 27곳, 공영 차고지는 16곳에 불과하다. 화물차 운전자들이 고속도로 갓길에서 ‘위험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4년 국토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9년까지 충남 서산·당진, 경남 김해 등에 화물차 휴게소 13개소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11개 시도에 공영차고지 21개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휴게소는 식당과 샤워실, 수면실, 세탁실, 운동 기구 등을 구비한 시설이고, 공영차고지는 장기간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시설이다.
하지만 화물차 휴게시설 확충 계획은 곳곳에서 사업이 취소되거나 보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이 11일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화물차휴게소 및 공영차고지 사업 추진 세부 현황’에 따르면 국토부가 계획한 13곳 휴게소 확충 계획 중 사업이 완료된 곳은 세 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기존 일반 휴게소 시설에 샤워실을 신축하거나 쉼터를 개선해 화물차 운전자들이 쓸 수 있도록 시설 보수를 하는 수준에 그쳤다.
13개 중 7개 휴게소는 사업이 취소되거나 진척율이 0%, 기한 내에 공정을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산 휴게소는 경제성 부족으로 사업이 취소됐고, 당진 휴게소는 지가 급등으로 사업이 보류된 상황이다. 안산 휴게소(2곳)와 함안 휴게소는 진척율이 0%다. 평택휴게소(2곳)의 사업 진척율은 8.3%에 그쳐 당초 목표인 2019년 사업 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21개소에 건설 예정인 공영차고지의 경우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8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3곳은 취소, 보류되거나 지자체의 사업비 미신청으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혐오시설’ 된 화물차 휴게시설
정부의 화물차 휴게시설 확충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화물자동차 휴게소의 사업 주체는 지자체와 도로공사, 항만공사 등이다. 지자체 입장에선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수가 없다.
공영 차고지 건립을 추진했던 강원도 원주시와 경남 창원시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진행하던 사업을 뒤엎고 대체 부지를 선정하고 있다. 원주시는 지난해 총 172억원을 들여 우산동 4만3193㎡ 부지에 총 500대 주차 규모의 공영차고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올 1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사업 추진을 위해 개최된 사업설명회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기피시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업이 무산됐다. 산업공단과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 등 기존 기피시설도 많은데 화물자동차 차고지까지 설치될 경우 생기는 불편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에 대형 화물차가 드나들 경우 생기는 소음과 매연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며 “대형 차량들이 마을에 수시로 들락날락할 경우 교통사고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도 반대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보조금이 축소된 것도 문제다. 기획재정부는 2014년부터 화물차 휴게소에 대한 보조금 규모를 전체 사업비의 30%에서 민간투자비용을 제외한 금액의 30%로 축소했다. 공영 차고지의 경우 총 사업비의 90%에서 70%로 보조금을 줄였다. 지자체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서 사업 추진을 기피하거나 우선순위 사업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충주·제천·음성·군산 공영차고지의 경우 지자체가 사업비를 신청하지 않아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화물차 휴게소 사업을 하고 있는 SK에너지와 같은 민간 기업은 화물차 휴게소를 더 짓고 싶어도 지자체의 소극적인 태도로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각종 규제 완화 및 보조금 늘려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물차 운행이 잦은 복합화물터미널, 물류단지, 항만 및 배후단지, 산업단지 등 대단위 물류시설을 개발할 때 화물차 휴게소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가급등으로 인한 용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발제한구역 내 화물차 휴게소 설치를 허용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산, 당진 휴게소와 담양 차고지의 경우 지가 급등 등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사업을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대형 차량 운전자의 열악한 근무 여건으로 인한 사고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휴게시설 확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화물자동차 휴게시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의 투자 유치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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