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골프집안 '김씨네'
장남 김광섭 유림골프클럽 대표
제주 오라CC서 캐디 가르치다 '김씨집안' 첫 프로 자격 따내
"한 해 두 번씩 꼭 동반 라운드…형제끼리 한 번도 다툼 없어"
"받은 만큼이라도 되돌려줘야죠…가족이름 내건 대회 여는게 꿈"
[ 이관우 기자 ] “골프로 시작해 골프로 끝나죠! 싸울 틈이 있겠어요?”
인천 계양구의 골프연습장 유림골프클럽에는 ‘골프 5남매’가 있다. 김광섭(61), 광일(57), 순미(53), 광범(52), 순영(46) 남매다. 추석 같은 명절 때 가족 회동을 하면 술자리를 벌이거나 묵묵히 TV를 보는 게 흔한 풍경. 하지만 이들이 뭉치면 골프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명 모두가 프로골퍼다. 맏이인 김광섭 유림골프클럽 대표는 “정치판 돌아가는 얘기부터 요즘 유행하는 ‘핫한’ 샷 기술까지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며 “하지만 자리를 파할 때는 결국 돌고 돌아 골프”라고 말했다.
◆프로 입문 계기 ‘5인5색’
‘김씨네’가 골프와 연을 맺은 계기는 제각각이다. 1호인 김광섭 대표는 제주 오라CC 건설 총괄책임자로 일하던 1979년 골프를 배웠다. 신입 캐디들에게 에티켓, 룰, 기술 등을 가르치는 일까지 맡았다가 운명처럼 골프에 빠져들었다.
“시범을 직접 보여야 했는데, 선생인 제가 못하면 창피하잖아요. 하루에 108홀도 돌면서 죽기 살기로 쳤죠.”
골프장이 귀한 때다 보니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당수 유명 프로들이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왔다. 한장상(76), 최상호(62) 프로 등은 꼭 오라CC를 찾았다. 이들에게서 얻은 귀동냥이 골프 인생의 씨앗이 됐다. 1년 만에 싱글에 진입했고, 10언더파(국제CC, 오라CC)를 두 번이나 쳤다. 금세 아마추어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즈음 시작한 연습장 사업도 술술 풀렸다. 그는 “클럽 챔피언을 딱 한 번 했는데, 골프장에 기념으로 다리 놔주고 하다 보니 몇 달 치 월급이 들어갔다”며 “이후에는 챔피언에 오를 것 같으면 슬그머니 후배들에게 양보했다”며 웃었다. 그때 붙은 별명이 ‘인천 볼쟁이’다. 오빠의 성공을 본 동생들도 차례로 프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넷째 광범씨는 “막내 여동생 순영이랑 프로숍을 했는데, 골퍼들이 프로숍 주인의 추천 클럽은 거들떠보지 않고 프로들이 추천한 채를 사가곤 했다”며 “프로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라고 말했다. 골프에는 무관심하던 둘째 광일씨는 나이 마흔이 넘어 프로가 됐다. 그는 “가족 라운드를 하는데 계속 나만 빠졌고, 모이면 골프 용어를 하나도 몰라 소외감이 컸다”며 “싫든 좋든 골프가 절실했다”고 했다.
김씨네 형제들의 가장 큰 자랑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챔피언인 셋째 김순미 프로(전 KLPGA 교육분과위원장)다. 통산 8승을 올린 순미씨는 “수천만원의 상금도 받아봤지만 아직도 오빠들과 1000원짜리 내기 라운드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장타자인 큰오빠와 쇼트 게임이 뛰어난 막내가 형제 중 실력은 한 수 위”라고 말했다.
◆가족 이름 건 대회 만들고파
유림골프클럽은 KLPGA 3부 투어인 점프투어 후원사다. 유명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대다수인 프로 대회 후원사 명단에선 귀한 일이다.
김광섭 대표는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님께서 딱 한 가지를 철칙으로 당부하셨는데, 10을 벌면 2는 꼭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골프 유망주를 발굴하고 도우면 전체 골프산업에도 생기가 돌고, 결국엔 ‘두루두루 좋은 일’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김씨네는 이번 추석에도 가족회의를 할 계획이다. 몇 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회 창설을 구체화하는 게 화두다. 순미씨는 “가족 이름을 내건 프로대회나 오픈대회를 여는 게 꿈”이라며 “골프 역사관과 박물관도 짓고 싶다”고 말했다. 패밀리 프로젝트를 위해 제주도에 이미 땅도 확보해 놨다.
“먹고살게 해줬으니 골프가 우리에겐 축복이죠. 받은 만큼이라도 최소한 갚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고요.” 큰오빠 광섭씨가 이야기하자 두 여동생이 틈도 없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맞아요.”
인천=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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