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년 내한한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체코필)는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 브람스를 연주했다. 체코 색만으로 빚은 성찬으로 포식하고 싶었던 관객에게 브람스는 살짝 거슬린 존재였으나 이르지 벨로흘라베크(1946~2017)의 지휘는 그 어떤 곡도 체코 특유의 색으로 물들이는 묘미를 보여줬다. 벨로흘라베크가 지난 5월 타계하자 대체 지휘자로 낙점된 이는 그동안 체코필과 좋은 호흡을 유지해온 페트로 알트리히터였다. 그가 결국 아시아 투어를 맡아 한국까지 오게 됐다.
지난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체코필이 들려준 사운드는 2014년과 달랐다.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부터 알트리히터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줬다. 2014년 연주가 벨로흘라베크에게 통제되며 내적으로 수렴되는 분위기였다면 이번 내한은 발산의 분위기라는 것을 단번에 느끼게 했다. 알트리히터는 펜싱을 하듯 점을 찍어가는 과감한 움직임을 선보였고, 이것은 음악에 그대로 녹아났다. 악수를 할 때 힘껏 힘을 줘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 같았다.
이어진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과 교향곡 8번은 체코필의 상징과도 같은 레퍼토리이자 배합이다. 체코필은 바츨라프 탈리히(지휘)와 파블로 카잘스(첼로), 바츨라프 노이만과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등과 함께 드보르자크의 협주곡을 음반에 담아왔다. 그 어떤 지휘자나 첼리스트가 와도 그들에게 체화된 전통과 기억으로 소리의 퍼즐을 끼워 맞출 준비를 갖춘 악단이다.
알트리히터와 체코필은 젊은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에게 필요한 모든 공간을 기꺼이 내줬다. 엔더스의 첼로는 1악장에선 당찼고, 2악장에선 친절하고 상냥했다. 다만 3악장에서 첼로와 악단의 짜임새가 분명하지 못해 아쉬움이 다소 남았다.
알트리히터는 첼로협주곡에서 악단과 협연자를 앞세워 걸었다면 교향곡 8번에선 본색을 드러냈다. 특히 향수 어린 3악장과 장대한 트럼펫의 연주가 반복되는 4악장의 대비는 극명하고도 선명했다. 현은 맑은 물에 사는 활어처럼 팔딱거렸고, 목관과 금관은 시원한 바람으로 홀을 메웠다. 특히 호른을 비롯한 금관의 화력은 대단했다. 누군가에겐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여러 개의 점이 모여 있는 군상처럼 다가간 순간이었을 터이고, 누군가에겐 통일감이 부족한 연주처럼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누구라도 새로운 체코필의 색을 본 것만은 확실하다.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 bst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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