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
긴 추석 연휴가 코앞이다. 연휴 동안 고향을 찾거나 해외로 떠나는 행렬마다 설렘과 기대감이 클 것이다. 그렇지만 한쪽으론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안팎으로 뒤숭숭한 뉴스들이 쏟아지는 탓이다.
특히 산업계는 시름이 깊다. 온통 불확실성뿐이라며 하소연한다. 중국의 무차별적인 사드 보복에다 감당이 안 되는 노동 편향적 정책들이 잇따르며 안팎으로 치이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투자 활성화 같은 유인책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탄식이 도처에서 나온다.
기업이 소위 '적폐'라는 건지
고용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련 부처들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기업들은 질식 직전이다. 산업을 키워야 할 산업부는 탈(脫)원전 도그마에 갇혀 미래 산업을 버리고, 시장 경쟁 촉진이 최우선인 공정위는 소위 을의 눈물을 닦아준다며 ‘갑을관계’와의 투쟁에 빠져 있다. 여기에 경제 사령탑인 기획재정부는 여당의 말 한마디에 마냥 휘둘려 ‘기재부 패싱’이란 말까지 듣는 지경이다. 기업을 몰아세우는 양상이 부처 곳곳에서 진행되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상기시키는 정도다.
새 정부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 더 정확히는 임금주도 성장이란 폐쇄경제를 전제로 한 책상 위 이론에 불과하다는 게 학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금처럼 만국이 거래로 연결된 개방경제 체제에선 안 통한다는 것이다. 원조 격인 칼레츠키 이론은 좌파 신(新)케인스학파로 계승됐지만 케인스학파에서도 이단으로 치부되는 이유다.
취지야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례 없는 실험이다. 의도대로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를 가져올 수 있지만 소비 증가가 투자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은 실증된 바 없다. 사실 과도한 임금 인상은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강성노조 고연봉 근로자 소득을 더 높일 뿐, 신규 고용을 어렵게 만들어 실업자 등 고용시장 밖에 있는 계층과의 소득 불평등을 오히려 확대할 우려가 크다. 더구나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가계부채도 심각하다. 중하위 소득계층은 소득이 늘면 소비가 아니라 부채를 갚고 젊은 세대라면 저축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옳다. 오죽하면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도 이를 채용하지 않겠는가. 특히 투자에는 절대적으로 부정적이다. 고용비용이 다락같이 높아지고 채용 후엔 정리도 어려워 새로 한 명 고용하기도 겁나는데 어떤 기업이 투자에 나서겠나.
청와대와 여당이 뒤늦게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금융 등의 규제 혁신과 벤처 창업·신사업 육성으로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와 닿지 않는다. 아직 개념조차 확실치 않다. 벤처 창업 정도로는 성장 동력으로 역부족인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봤던 터다.
경제까지 불감증이라면…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3%로 올렸다. 내년에도 3%다. 그렇지만 2분기 성장률은 0.6%(전 분기 대비)에 그쳐 1분기의 반 토막이었다. 청년실업률은 8월(9.4%)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무슨 근거로 이런 성장을 자신하는지 궁금하다.
불확실성을 없애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끊고 아예 이 나라를 떠난 뒤엔 땅을 쳐봐야 소용없다. 안보 불감증에 경제 불감증까지 번지면 결말은 뻔하다. 한국이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을 따라간다는 말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다. 이젠 남미가 아니라 일본을 따라가는 정도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그래도 이번 추석 역시 보름달은 뜰 터이니….
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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