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경영·경쟁 보장 지침 발표
중국, 건국 이후 첫 '기업가 정신' 명문화
민간투자 확대 포석
지재권 보호하고 공정경쟁 보장
정책 도입 때 업계 의견도 반영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 붙잡기로
10월 당대회서 당헌에 실릴수도
[ 베이징=강동균 기자 ]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신(新)중국(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기업가정신을 장려하는 공식 지침을 내놨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확대, 노동개혁 양대 지침 폐기 등 반(反)기업 정책으로 기업가정신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지난 25일 공동 명의로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내용의 공식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10개 항목과 29개 세부사항으로 이뤄졌다. 기업인의 재산권과 자율적 경영권,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인을 존중하고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기업가정신의 혁신과 발전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가 주요 경제정책을 도입할 때 기업인의 의사를 적극 묻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자본주의 국가의 지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경쟁을 보장하고 혁신을 장려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이는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갈수록 둔화하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작년부터 민간 투자 증가세가 급작스럽게 둔화한 것과 관련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에서 민간부문 투자는 전체 투자의 60%가량을 차지하고 일자리의 80%를 제공한다. 2013년만 해도 민간 투자는 전년 대비 23.1% 증가해 국유기업 투자 증가율(16.5%)을 압도했다. 2015년에도 10.1%로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민간 투자 증가율은 3.2%로 급락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달까지 작년 동기 대비 6.4% 늘었지만 국유기업 투자 증가율(11.2%)에 비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민간 투자 부진이 계속되면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것은 물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경제구조 개혁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규제 강화로 기업 환경이 나빠지면서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도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로 꼽힌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중국에선 22개월 연속 자본 유출이 지속됐다.
베이징의 정치분석가 장리판은 “기업인들은 최근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로 나가는 기업을 붙잡기 위해 당 중앙이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1949년 신(新)중국 건립 이후 중국 공산당이 기업인 보호와 지위를 명문화하고 기업가정신을 장려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화통신은 “기업가정신은 공급 측면의 구조개혁을 심화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며 경제와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중국 공산당은 기업인을 착취계급인 자본가로 취급하며 각종 제약을 가했다. 1956년 대약진 운동과 함께 공사(公私)합영 조치를 통해 민간 기업 대부분의 재산권을 몰수해 국유화했다. 그러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 기업인의 활약이 커지면서 민간 기업은 고도 성장의 핵심동력이 됐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2001년 ‘3개 대표 이론’을 주창하면서 기업인에게도 공산당 입당의 문이 열렸지만 중국 정치권과 사회엔 기업인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18일 개막하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이번 지침이 나왔다는 점에서 기업가정신에 관한 내용이 공산당의 최고 규범인 당장(黨章·당헌)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