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일 개봉 '남한산성' 주연 맡은 배우 이병헌
'남한산성'은 어떤 영화…김훈 소설 150억 들여 제작
이판 최명길·예판 김상헌 통해 병자호란 47일 위기 과정 그려
이병헌의 과감한 도전
"선이 악을 이기는 게 영화인데 패전의 역사여서 흥행 걱정
인물에 끌려 과감히 선택"
[ 유재혁 기자 ]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중신들이 고립무원의 47일을 견디다 항복한 치욕사를 그린 ‘남한산성’(사진)이 다음달 3일 개봉한다. 김훈의 동명 소설을 150억원을 투입해 영화화했다. 순간의 치욕을 견뎌내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죽음으로 맞서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이 시종 팽팽하게 대립한다.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최명길 역을 열연한 이병헌을 만났다.
“완성작을 보니 오랜만에 나온 의미있고 좋은 영화라고 느껴집니다. 요즘 영화들과 호흡과 속도, 감성과 분위기가 달라요. 400여 년 전 실패의 역사에서 분명 우리가 배울 점도 있을 겁니다.”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큰 울림이 있었다고 한다. 가상의 얘기가 아니라 슬픈 역사라는 게 안타까웠고, 그 슬픔이 크고 깊었다는 것이다.
“두 인물 누구에게도 치우침 없이 객관적으로 이끌어간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맞고, 저 사람의 정반대 주장도 맞다고 느껴질 겁니다. 저도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어요. 둘 다 나라와 백성을 지극히 아끼는 충신이니 그랬겠죠.”
그는 그러나 이런 요소 때문에 영화 전개가 자칫 위험해 보였다고 한다. 그는 “선이 악을 응징하는 게 영화의 힘인데 그게 없었다”며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패전의 역사니 흥행 면에서 불리한 점도 좀 걸렸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주화파 최명길은 ‘역적’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임금이 청나라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명길은 자신의 주장을 은유적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반대파인 김상헌에 대해 ‘유일한 충신’이라며 왕에게 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무엇보다 청나라 황제 앞에서 백성은 아무 잘못 없으니 죽이지 말아달라는 대목은 제 개인적인 성향과도 맞았어요.”
극중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절한 인조의 이마에 흙이 묻자 최명길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최명길은 인조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소신대로 임금이 움직인 것을 보니까 그냥 터질 것 같은 감정, 목놓아 울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심정이었을 거예요.”
촬영 현장에서 그는 스태프들에게 상헌 역을 맡을 줄 알았는데 명길을 선택해줘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상헌은 할 말을 다 하는 캐릭터다.
“상헌 역을 제안해왔어도 했을 겁니다. 둘 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고 애국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상헌 역 김윤석 형과 논쟁하는 절정 신을 촬영할 때는 스태프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날 선 분위기에서 해냈습니다. 저와 김윤석 형보다 인조 역 박해일 씨가 더 긴장했어요. 논쟁 중간에 받아치는 대사를 실수할까봐 말입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몇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많은 외국 영화인도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출연한다. ‘아이리스’ 이후 9년 만의 드라마다. 김 작가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자신의 입으로 말해보고 싶다고 한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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