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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의 조선 왕릉들] '거품 뺀 왕릉' 혁신 깃든 세조와 정희왕후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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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광릉


[ 김희경 기자 ] 경기 남양주에 있는 광릉(사진)은 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고, 사적 제197호로 지정돼 있다.

광릉은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들고, 중간 지점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우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으로 조성됐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 언덕이 세조, 오른쪽 언덕이 정희왕후 능이다.

세조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재위 14년 동안 왕권을 강화하고, 호패법을 복원하고 군제를 정비했으며 토지 및 관제를 개혁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조선 초 왕릉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도 세조였다.

세조는 능제(陵制)가 지나치게 화려하다 보니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 민폐가 심하다고 여겨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지는 방식)으로 능을 만들었고 무덤 둘레에 병풍석도 세우지 않았다.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능역 아래 쪽에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없는 것도 광릉만의 특이한 점이다. 이렇게 간소하게 조성해 부역 인원을 반으로 줄이고 비용도 크게 줄였다. 이는 조선 초기 능을 만드는 제도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세조는 생전에 이곳의 숲과 산림에 반해 자신의 능으로 정했다고 한다. 주변 숲은 광릉숲이라고 불린다.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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