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만이 아니라 특별한 족적을 남길 사람
그런 실력 갖춘 '진짜 덕후'를 만나고 싶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덕후’란 한 가지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을 뜻한다. 1970년대 일본에 등장한 ‘오타쿠’가 그 시초라고 한다. 처음 일본에서 오타쿠란 신조어가 등장했을 때는 대개 애니메이션 애호가, 피규어 수집가 등 기호성이 강한 일부 소수층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타쿠에는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란 속뜻도 내포돼 있어 한때는 비호감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덕후란 단어는 일본말 오타쿠가 한국으로 넘어와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처음 시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애호가에게 붙이는 말이었다가 다양한 분야에서 본인만의 깊이와 취향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그 범위와 뜻이 넓어졌다. 지금 시대의 덕후란 특정 분야에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식견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과거의 덕후가 취미생활에만 빠져 경제력과 사교성이 부족한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졌다면, 현재의 덕후는 비슷한 취미를 지닌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이자 특정 분야 전문가로서 ‘특별한 사람’으로 진화한 듯하다.
중요한 것은 덕후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고, 누구나 ‘성공한 덕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덕질’(‘덕후질’의 줄임말, 덕후의 제반 행위를 통칭)에도 책임감과 희생, 노력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덕후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생활로 자신의 덕질을 끝내지 않는다. 즉 마니아와 덕후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른 것이다. 21세기 성공한 덕후들에겐 오타쿠 시대엔 상상할 수 없는 부와 명예가 덤으로 주어진다. 사람들은 성공한 덕후를 신뢰할 뿐 아니라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미국식 덕후의 표현인 ‘너드’라 칭하고, “너드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21세기는 덕후가 성공하는 시대로 빠르게 변화해가고 있다.
성공한 덕후의 리스트는 몇몇 이름만 들어도 아주 화려하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민간 우주선과 무인자동차를 제조하는 일론 머스크, 영화 ‘터미네이터’와 ‘아바타’를 연출한 제임스 캐머런, 게임 개발자 고지마 히데오 등. 이들은 모두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세상을 지배하는 덕후다. 특이한 점은 이들은 ‘부(富)’의 순위로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기에 걸쳐 잊히기 어려운 아주 특별한 족적을 세상에 남기고, 그것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다. 《크리에이터 코드(Creator Code)》의 저자는 위의 덕후 기업이 포함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200곳을 조사한 뒤 “꿈을 품은 기업들이 성공한다”는 결론을 냈다. “그저 돈벌이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신이 간절하게 이루고자 하는 꿈을 좇을 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value)를 시장에 만들어내고, 이는 곧 시장의 혁신자(disruptor)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근래 신입사원을 채용 중이다. 많은 젊은이가 안정적인 스펙과 취업준비생 카페에 올려질 법한 모범답안을 얘기한다. 면접 테이블에 앉은 나는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한다. 뻔한 질문을 던진 면접관을 기죽게 하는 후덜덜한 실력의 ‘진짜 덕후’를 만나고 싶다. 진심이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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