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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역지사지 중국' (2)] 상대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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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흔히들 商場如戰場(사업의 현장은 전장과 같다)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든 또는 중국인과 협상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고려하는지를 알면 도움이 된다. 현장이 중국이라면 혹은 우리가 다소 아쉬운 입장이라면 더더욱 중국 문화도 알아야 한다. 隨俗(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이란 말은 부족하다. 그래서 入境을 말한다. ‘현지에 가면 먼저 그 지역의 습관을 물어 보라’는 말이다. 중국에서 협상을, 중국인과 대화를 잘하려면 중국인이 어떤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모르면 아는 이들에게 자문하거나 혹은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내가 주장하는 논리에 상대방도 동의할 것이라는 확신은 대부분 환상일 수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소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논리’와 중국인이 추구하는 ‘합리’가 때로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객관적 논리와 중국인의 합리는 달라

가치관이 다른데, 목표가 다른데 내 마음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換 位思考·환위사고). 쌍방이 서로 같은 기준을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협상한다면 결국 논리적으로 합치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타 문화권과의 협상은 종종 출발점도, 심지어 목표도 서로 다를 수 있다.

한국의 A사가 중국 국가산업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연히 중국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리라 여겼다. 파트너사의 결정권자들은 물론이고 중앙 및 해당 지방정부 역시 적극 지지했다. 순조롭기만 할 줄 알았던 이 프로젝트는 뜻밖에 제동이 걸렸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중국 진출이 근본적으로 어려울지 모르겠다”는 충고를 해줬다. 어렵게 그 진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중국의 고위층이 A사에 협조를 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한국의 A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시장 상황이 바뀌어 투자하려고 하는데, A사는 몇 년 전 중국 측의 제안을 거절한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의 시장상황은 누가 봐도 합작을 거절하는 게 맞았기 때문인데, 그때 합작제안을 거절당한 그 당사자(또는 그의 측근)의 생각은 달랐다. 후에 그 고위층의 존재감을 발견하고 수많은 관련자를 만나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 중 누구도 그런 과거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얘기해주지 않았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콕 집어 물어봐도 한결같이 “그럴 리 없다. 설사 그렇다 해도 우리는 公事公辦(공과 사를 엄연히 구분한다)한다!”고 잡아 떼었다.

사업적으로 보면 우리 측이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은 진전이 안 되고 속절없이 꼬여만 갔다. 문제가 안 됐던 조항들이 갑자기 문제처럼 다뤄지고, 심지어 A사와 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사업들에서조차도 이상한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워서 주위 관련 인사들에게 물어보면 “夜長夢多(야장몽다: 밤이 길면 꿈이 많아진다)”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시간이 지연되면 생기는 자연스런 부작용이라고 설명해준다. 고위층의 개인 감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해석이다. 그럴수록 회사의 손실은 커지고 고민은 깊어만 갔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명쾌한 숫자로 투자 효과를 보여줘도 그뿐이었다. 설명은 되는데, 설득이 안 됐다.

설명으로는 부족, 설득이 돼야

“但?有用(맞지만, 무슨 상관이야)!” 중국 친구가 혀를 끌끌 차며 해주던 말이다. “네 말 알겠는데, 그래서 뭐?”라는 말이다.

“네 주장은 틀렸어”라고 한 이상 절대 안 되지만, “네 말이 맞아(對)!”라는 말을 들었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네 말이 맞는데, 그래서 뭐?”라는 지경에 이르면 정말 답답한 상황이 생긴 거다. 바로 우리가 따지는 ‘논리’와 중국인이 생각하는 ‘합리’가 달라지는 경우다. ‘논리’는 궁극적으로 맞다(對)와 틀리다(不對)의 이원적이지만, 중국이 주장하는 ‘합리’는 오히려 다원(多元)적이다. 우리는 절대 고려하지 않을 사항이 때로는 (위의 사례처럼) 매우 결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내 말이 맞는 것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합리적으로 잘’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 시작은 상대방의 고민과 사유방식을 한 번쯤 제대로 고민해보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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