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때와 닮은 점
미국이 먼저 가능성 흘리면 청와대 처음엔 일단 부인
국방부가 다시 총대 메고 "검토 중" 입장 밝혀
여론 체크 등 과정 비슷
북한의 도발강도 따라 전술핵 배치도 결론 날 듯
[ 정인설/이미아 기자 ]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미국 백악관에서 의회로 확산되면서 전술핵이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같은 과정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보다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여론 띄우기에 나서고 청와대가 부인하는 양상이 사드 논란의 초기 국면과 닮아 있어서다. 국내 여론을 떠보기 위해 국방부가 총대를 메고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도 비슷하다.
북한의 도발 강도가 배치 여부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흡사하다. 외교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 동참 및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가 전술핵 논의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드 배치 닮아가는 전술핵 재배치
지난 3월 뉴욕타임스를 통해 처음 전술핵 재배치 관련 보도가 나온 뒤 한국보다 미국이 전술핵 도입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3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전술핵 재배치 방안이 논의됐다고 8일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10일 CNN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사드 논의에 처음 불을 지핀 쪽도 미국이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2014년 6월 한국국방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한반도 사드 전개를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 뒤 우리 정부는 극구 부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토 쪽으로 선회했다.
청와대는 2015년 3월 사드와 관련해 “미국 측의 요청이나 협의, 도입 여부 결정을 한 적이 없다”는 3무(無)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한 달 뒤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새뮤얼 라클리어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이 “한반도에 사드 포대 배치를 논의 중”이라고 하자 우리 국방부는 “미국이 요청하면 사드 배치를 협의하겠다”고 돌아섰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국방부 입장도 한·미 국방장관 회담 전과 후로 갈린다. 지난달 말 미국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을 만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처음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부인 속에서도 국방부가 계속 “검토 중”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는 장면도 사드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 가능한가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가 사드 입장을 바꾼 것은 2016년 1월13일이다. 북한이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며 4차 핵실험을 감행한 1주일 뒤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는 국익에 따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흘 뒤 미 전략문제연구소는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개적으로 권고했다.
같은 해 2월7일 북한이 일본 오키나와 상공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하자 한·미 당국은 사드 배치를 위한 공동 실무단 구성에 합의했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강력 반발했지만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자 한·미는 작년 7월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측면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대응과 중국 압박용으로 주한미군에 전술핵 배치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면에서 전술핵이 사드 도입 초기 국면을 닮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술핵과 사드를 달리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사드보다 전술핵이 미치는 파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전술핵은 북한의 도발을 더 부추길 가능성에다 일본과 대만 같은 주변 국가의 ‘핵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비핵화 선언을 우리 스스로 파기해 북핵 폐기 압력의 명분을 잃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구와 북한의 도발 강도가 전술핵 재배치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술핵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시키고 북한 비핵화 협상 카드로 전술핵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이미아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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