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압박 강도 높이는 미국
스위스·홍콩에 비밀계좌
간부 선물용 사치품 등 구매…일부는 핵·미사일 개발 쓰여
중국도 고강도 제재 동참할 듯
석유 공급 지속 명분 약해져…전면중단 아닌 단계 축소 유력
[ 김동욱/정인설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해외에 은닉한 비자금이 총 30억~50억달러(약 3조3780억~5조6275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위 ‘혁명자금’이라고 불리는 ‘검은돈’이 스위스와 홍콩, 중동 등의 금융회사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 자금은 김정은의 사치품 구입과 통치자금 용도로 주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1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김정은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통치자금 최대 50억달러 달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8일 김정은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해외에 숨겨놓고 쌈짓돈처럼 사용해온 소위 혁명자금이 최대 5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 등의 비자금 규모를 총 30억~50억달러로 추산했다. 수십 개 국가의 은행에 수백 개 차명계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은 업무 성과를 낸 북한 공산당 간부에게 하사하는 고급 시계나 전자제품 등을 해외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와 홍콩, 중동 등의 금융회사에 차명으로 맡겨놓은 자금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일가 등 소위 로열 패밀리가 소비하는 사치품 등을 사는 데도 이들 자금이 쓰인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일가는 수년간 지속된 대북 경제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 사치품을 사들였다.
김정은은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105주년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최신형 벤츠 차량을 타고 등장했다. 영국제 호화 요트 ‘프린세스 95 MY’ 등을 소유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에멘탈 치즈와 분유, 시계 등 어린시절 유학했던 스위스에선 만든 고급 소비재도 꾸준히 구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겨울에는 마식령스키장에서 스키대회까지 열었다.
2014년 발표된 유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한 해 해외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6억4580만달러(약 7274억원)를 썼다. 그해 북한 총 수입액 39억3000만달러의 16%를 차지하는 규모다.
해외 비자금은 단순한 사치재 구입에 쓰일 뿐 아니라 군사비로도 사용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김정은의 해외 은닉자금 중 일부가 핵·미사일 개발에 들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자금은 김정은 아킬레스건
김정은이 체제를 유지하려고 해외 비자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김정은 일가가 비자금 채널 유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북한 지도부가 해외 비자금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가늠해보는 데는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인 자금으로 알려진 BDA 예치자금 2500만달러(약 281억원)를 동결했다. 북한은 강력 반발했다. 당시 북한이 거액도 아닌 금액에 집착하는 것을 의아하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김계관 당시 북한 외무차관은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주인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조선노동당에는 김정은의 비자금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기관으로 38호실(국내)과 39호실(해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남아시아에서 보험회사를 운영했던 전직 38호실 요원은 아사히신문에 “각 부서가 연간 목표를 정한다”며 “달성하면 훈장과 선물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판받고 부서가 해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자금 지출액은 연간 수억달러 정도였다”고 했다.
북한 김씨 일가의 혁명자금은 한때 100억~200억달러에 달했지만 김정은 정권이 수립되면서 상당액이 소비됐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자산 중 일부가 유엔 안보리 제재 등으로 동결되면서 중국과 러시아 이외 지역의 해외 비밀계좌를 이용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이번 유엔 안보리에서 김 위원장 일가의 자산을 동결하면 김 위원장의 해외 비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 파악되고 통치자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작년 9월 이후 계속된 대북 제재로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이 대북 제재 이전의 40% 정도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 제재안을 일부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도 이날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정인설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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