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규제개혁 '시동'
혁신성장 이끌 '규제 샌드박스' 도입
국제기준에 부합하면 제품 출시후 사후규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패러다임 시프트
소상공인·중소기업·일자리 관련규제 우선 해결
[ 고경봉 기자 ] 정부가 7일 내놓은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방향은 ‘문재인표 규제완화 정책 1호’다. 정부는 지난 5월 출범 후 ‘제이(J)노믹스’(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철학)의 핵심인 소득 주도 성장론에 따라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수단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초연금 단계적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각종 일자리·복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이런 정책들이 지나치게 분배 쪽에만 초점을 맞춰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론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정부도 이런 판단에 따라 소득 주도 성장을 보완할 ‘혁신성장’ 방안을 내부적으로 준비해 왔다. 국무조정실이 이날 발표한 것이 그 첫 번째다. 문재인표 규제개혁의 핵심은 ‘4차 산업혁명에 걸맞지 않은 규제를 과감히 풀고 신기술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사전 허용-사후 규제’로 전환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론’,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론’이 있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규제개혁은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로 요약된다. 혁신적인 제품에 대해서는 법 규정 없이 허가를 해주고 사후에 문제가 생길 때만 규제하는 제도다. 모래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처럼 규제가 없는 공간에서 새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보란 얘기다.
규제 방식도 바뀐다. 예컨대 영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전자화폐를 통화로 분류해 포괄적인 차원에서만 규제한다. 그 덕분에 수백여 가지 전자화폐가 유통 중이다.
반면 한국은 비트코인을 포함해 서너 개의 전자화폐만 실질적으로 유통된다. 열거식 규정 때문이다. 전자금융거래법에는 △가맹점이 500곳 이상이어야 하고 △구입할 수 있는 재화가 다섯 개 이상이어야 하며 △두 곳 이상의 광역시·도에서 유통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 보니 전자화폐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업체들은 대부분 대형 금융회사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엄두도 못 낸다. 정부는 이런 열거식 규제를 바꿔 다양한 전자화폐가 국내에서도 개발될 수 있도록 했다.
◆법 기준 없어도 출시 허용
정부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산업분류체계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재조정할 계획이다. 초소형 전기삼륜차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한국의 분류체계로는 이 같은 제품이 나오기 힘들다. 국내 법에 따르면 삼륜차는 자전거나 오토바이처럼 바(Bar) 형태의 운전대만 설치할 수 있다. 바 형태 운전대의 삼륜차는 유턴이나 코너링 등이 약한 단점이 있다. 정부는 낡은 산업분류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앞으로 휠 형태의 삼륜차도 출시할 수 있게 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기술 분야 사업체들 수백여 곳과 간담회를 하고 현장 목소리를 들은 결과 사업화 단계에서 규제에 걸린다는 애로사항이 가장 많았다”며 “이에 따라 법제처와 협의를 거쳐 국내 법에서 기준이 불명확하더라도 국제기준에 부합하면 우선 허용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손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규제 차등 적용
일자리 창출과 중소·중견기업 관련 규제도 과감히 풀기로 했다. 시장 신규 진입을 막고 사업자 간 경쟁유인을 떨어뜨리는 분야로 △먹거리·생필품·레저분야 △4차 산업혁명 기반산업 분야 △독과점이 고착된 분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 분야 등 4개 분야를 정해 규제 해소 방안을 찾기로 했다.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한 규제 수준을 차등 적용하고 규제 심사 시에는 중소기업 영향평가 등을 거치도록 할 방침이다. 이련주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규제 완화를 위해 행정규제기본법을 개정하고 부처소관별로 시행령도 하반기 정비할 것”이라며 “내년부터 관련 내용을 반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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