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급전으로 공장가동 애로" 중소기업 대표 발언 보도하자
언론과 접촉한 기업 찾아내 "무슨 말 했나" 캐물어
"기업에선 말한 적 없는데 언론이 마음대로 보도"
상부에는 허위 보고서 제출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 이태훈 기자 ]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전력 사용 감축 지시(급전 지시)에 불만을 가진 기업을 색출하는 작업을 벌였다. 언론 등에 급전 지시로 피해를 봤다고 제보한 기업이 대상이었다.
급전 지시 업무를 담당하는 산업부 전력산업과 관계자는 지난 24일 중소기업 대표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관계자는 “언론 보도에 응한 것이 맞느냐” “급전 지시에 참여하면 인센티브를 받는데 왜 피해를 본다고 기자에게 얘기했나” “급전 지시가 탈(脫)원전 때문에 하는 것이라 생각하나” 등의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전 지시란 정부가 기업에 전기 사용량 감축을 지시하는 것으로, 해당 기업은 공장 생산라인 일부를 멈추는 식으로 대응한다. 정부는 지난달 12일과 21일에 각각 세 시간, 네 시간의 급전 지시를 내렸다. 지난달 20일과 24일, 이달 7일에는 테스트 형식을 빌려 감축 지시를 했다.
산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올여름 정부가 기업에 잇따른 급전 지시를 내린 게 탈원전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전력 예비율(공급 예비율)을 높게 유지해 “원전을 줄여도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전력산업과 관계자는 A씨와의 통화 내용 등을 바탕으로 “해당 기업은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탈원전 관련 언론 보도는 허위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문건을 작성해 상급자 등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A씨는 산업부 관계자에게 “탈원전 정책에 따라 전기요금이 올라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며 정책 수요자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급전 지시 보도 이후 탈원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가 언론 취재에 응한 제보자 색출까지 벌인 것을 놓고 합리적인 대응 범위를 넘어선 수준이란 지적이 많다. 특히 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산업부 공무원이 이런 사안에 대해 중소기업인에게 직접 전화한 것 자체가 해당 기업에 대한 압력으로 비쳐질 수 있다. “급전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도 기업이 피해보는 것은 없다”고 주장해온 산업부가 언론 제보자 색출에 나선 것을 두고 기업인들 사이에선 “산업부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지시를 어길 수 있겠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산업부는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업무보고에 대한 지적을 받았음에도 이를 언론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산업부가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50% 감축하겠다고 제시하자 “2030년까지는 너무 길다. 이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얼마를 감축하겠다는) 중간 목표가 왜 없나”라며 “목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이 정부가 (차기 정부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난 뒤 산업부 출입기자단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산업부에 어떤 얘기를 했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지적사항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산업부와 같이 업무 보고를 한 환경부 브리핑을 통해 나중에 밝혀졌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부처별로 적폐청산기구를 설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기업인을 찾아내고, 언론 보도 과정을 왜곡해 윗선에 보고하고, 대통령 지적사항에 대해선 입을 닫는 것이야말로 관료사회의 적폐가 아닐까.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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