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한류를 끝났다고 하거나 앞으로 시들해질 것이라고 보는 건 대부분 국내적 시각이다. 한류는 일시적 유행이 절대 아니다.
당장 멕시코를 보자. 5년여 전부터 멕시코에도 한류 바람이 불어 한류 팬클럽 가입자 수가 350만 명이나 된다. 멕시코 양궁대표팀 감독을 지낸 이웅 씨가 10월께 론칭하는 ‘구스티비(Goods TV)’는 중남미에 처음 소개되는 스페인어 기반 한류 플랫폼이다. K팝, 드라마, 예능 등 콘텐츠는 물론 화장품 의류 액세서리 등도 판다. 중국보다 더 클 것으로 기대되는 중남미에 한류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커머스(commerce)가 결합된 것이 눈에 띈다.
산업혁명과 닮은 폭발적 성장
20여 년 전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가 ‘갑자기’ 유행할 때만 해도 우리는 별 준비가 없었다. ‘겨울연가’의 일본 팬들이 남이섬을 찾을 때도, 유커(중국 관광객)들이 명동으로 몰려올 때도 그저 신기해할 뿐이었다. 그래선지 세계한류학회가 만들어져 몇 해째 국제대회를 열고 있는 지금도 한류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이들은 특정 업종 사람들뿐이다.
한류가 뜨게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한류의 태생에는 ‘산업혁명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1차 산업혁명과 20세기 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진 정보혁명의 공통점은 바로 돈과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것이다. 돈이 쌓이니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발명품과 생산품이 넘치고 세계를 주도하는 지역으로 급성장하게 됐다.
한류의 폭발적 성장도 같은 맥락이다. 21세기 초로 접어들면서 주식 테마주는 단연 ‘엔터테인먼트(연예)’였다. 몇 해간 실적이 없어도 ‘엔터’라고 하면 투자가 몰렸다. 일부는 우회상장을 하면서 엔터 테마를 활용해 돈을 끌어모았다. 그 돈을 보고 걸그룹, 보이그룹 등 연예 지망생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서바이벌 오디션 등이 유행하면서 불은 더 붙었다. 그 격심한 경쟁 속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새로운 스타일, 획기적인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선진적인 스타 양성 및 제작시스템이 구축됐고 스타 공급이 넘치니 품질 면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류가 탄생했다. 얼마나 연예 지망생들이 많았으면 소위 ‘스타’만 보면 중국 전체보다 한국 연예인 숫자가 훨씬 많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유행 아니라 비즈니스 기회로
한류가 글로벌 상품으로 영향력이 커진 데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의 힘이 컸다. 한국 연예기획사 채널이 유튜브에 생긴 것이 2011년께였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강타한 것이 2012년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미국, 유럽에 한류가 퍼졌고 중국, 동남아 등에서는 자국판 동영상 플랫폼이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K팝과 드라마, 오락물이 대유행을 하게 됐다.
이런 한류가 이제 일본과 중국을 넘어 중남미까지 퍼져 가면서 글로벌 산업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신흥국은 정보기술(IT)이 발달돼 있지 않고 자체 포털사이트들이 글로벌 수준에 미달하기 때문에 IT 플랫폼 구축 자체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되는 것이다.
중국에는 전자상거래로 돈을 버는 ‘왕훙(파워블로거)’들이 100만 명 이상이나 된다. 이들은 평균 월 3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업가들이다. 한류가 글로벌 산업이 되면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열린다. 다만 한류를 유행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볼 수 있어야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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