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 기자 ]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8·15 대만 대정전 관련 산업부 입장’이란 자료를 냈다. 다른 나라 정전 사태에 한국 정부가 자료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자료의 요지는 “대만 대정전은 탈(脫)원전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타탄 가스발전단지(4.2GW)가 일시 정지되면서 지역별 순환단전이 시행됐다”고 설명했다.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6기가 작동을 멈춘 게 정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산업부 주장대로 탈원전과 이번 정전은 상관관계가 없을까. 대만은 지난해 5월 차이잉원 총통 취임 후 탈원전 정책을 시행해 원전 6기 중 3기의 가동을 멈춰 놨다. 공정률이 98%로 완공을 눈앞에 둔 신규 원전 2기 건설도 중단했다. 가동 중단한 원전 3기와 신규 원전 2기가 제대로 돌아갔으면 4~5GW 전력이 추가될 수 있었다. 무리한 탈원전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LNG발전소 6기가 멈췄어도 전체 가구 3분의 2가 전력이 끊기는 대정전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대만은 탈원전 시행 후 만성적인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주일간 한낮 기온이 38도를 기록하는데도 원전을 풀가동하지 않아 전력 예비율이 1%대로 떨어졌다. 지난달 31일에는 송전탑이 쓰러진 것만으로도 65만 가구가 정전을 겪었다. 대만 야당도 탈원전에 따른 만성적 전력 부족이 정전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이 총통은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혀 국민 반발을 사고 있다.
산업부가 대만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자료를 낸 의도는 뭘까. 대만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의 ‘롤모델’ 국가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늘린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은 차이 총통 공약(2025년까지 신재생 비중 20%)에서 따온 것이다. 신재생으로 모자란 부분은 LNG발전으로 메운다는 것까지 똑같다. 대만의 ‘탈원전 부작용’이 부각될수록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등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이 큰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산업부는 “대만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고 했지만 이 같은 자료를 냄으로써 대만과 한국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인상만 주게 됐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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