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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흡연자 '전용 쉼터' 된 서울 도심의 독립투사 동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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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72돌 광복절… 방치되고 잊혀진 순국선열

일본 총독에 폭탄 던진 강우규 의사
서울역 광장 동상은 '시민 기피지역'
"노숙인 술판에 토사물·악취까지…"

명동 이회영 선생 흉상선 버젓이 흡연



[ 황정환/성수영 기자 ]
빛바랜 동상 옆에는 남루한 행색의 노숙인이 자고 있었다. 멀지 않은 광장 한쪽엔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바닥엔 마시다 버린 소주병이 나뒹굴고 동상 받침대에는 취객의 토사물이 변색된 자국이 선명했다. 행인들은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다. 72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역 앞 강우규 의사의 동상은 흉물처럼 방치돼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은 광복절을 맞아 서울 곳곳에 세워진 독립투사들의 기념물을 살펴봤다. 상황은 심각했다. 강 의사 동상이 있는 서울역광장은 노숙인들의 근거지가 된 지 오래다. 흡연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동상 옆에 담배꽁초를 던졌다. 그곳이 항일 열사의 혼이 담긴 곳임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지린내 진동하는 서울역 앞 강우규 의사 동상

1919년 8월28일 당시 예순다섯이던 한의사 강우규 선생은 남대문역(현 서울역)으로 향했다.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부임 소식을 들은 그는 며칠을 인근 여인숙에서 묵으며 거사를 준비했다. 새 총독의 부임 당일인 9월2일, 그는 사이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지금 그의 동상이 서 있는 자리에서다. 폭탄은 터졌지만 살짝 빗나갔다.

강 의사는 현장에서 몸을 피했지만 군경의 추적을 따돌리진 못했다. 1920년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그의 교수형이 집행됐다.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교수형을 앞둔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의 혼이 서려 있는 서울역광장은 국내 최대 노숙인 밀집 구역이다. 서울시 추산 144명(2016년 기준)이 서울역광장에 터를 잡고 있다. 중구와 용산구는 하루 두 번씩 대형급수차를 동원해 광장을 물청소한다. 여름철마다 강해지는 노숙인들의 분뇨 지린내를 지우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노숙인뿐 아니라 하루 유동인구가 수만 명에 달하는 이곳에서 물청소의 효과는 채 한 시간을 못 간다. 2012년부터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서울시가 재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 20명으로 구성된 ‘청소사업단’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이곳은 시민들에겐 항일 투사의 기념 공간이라기보다 빨리 벗어나고픈 슬럼 지역이다. 동상 옆을 지나던 시민 양모씨(42)는 “매일같이 지나는 곳이지만 동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전혀 몰랐다”며 “여름철이면 악취가 더 심해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했다.

치워도 쌓이는 꽁초…문제는 시민의식

물론 깔끔하게 정돈된 기념물도 적지 않았다. 항일 의사들의 기념물이 밀집한 서울 명동으로 걸어가봤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방 명동 입구에 있는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 의사는 1926년 명동에 있던 일제의 수탈기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동상 앞엔 형형색색의 꽃 화분이 놓여 있었다. 1909년 이완용을 처단하려던 23세 청년 이재명 의사의 기념비가 있는 명동성당 주변도 말끔했다. 환경미화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념비 주변을 청소한다는 게 중구청의 설명이다. 중구청 주민으로 이뤄진 28명의 ‘내고장 지킴이’ 단원들은 1주일에 1~2회씩 중구 역사문화자원을 하나하나 닦아가며 관리한다.

문제는 관리 부실이 아니라 시민의식이었다.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옆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흉상 앞에선 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근처엔 이곳이 금연구역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담배를 다 피우고 난 뒤 흉상이 자리한 화단에 담배를 비벼 껐다. 꽁초는 흉상 주변에 던졌다. 이 흉상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엔 “모른다”고 답하고 떠났다.

얼마 안 지나 한 무리의 회사원들이 한손엔 담배를, 다른 한손엔 커피를 들고 걸어왔다. 이들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꽁초를 던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루에만 여러 번 청소하고 주기적으로 관리하지만 수만 명이 매일 지나는 길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긴 힘들다”고 털어놨다.

10년 새 현충시설 3배 급증…예산은 깎여

전국의 현충시설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에도 이 같은 현실은 큰 고민이다. 현충시설은 급증하는데 이를 관리할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다. 2003년 811개이던 현충시설은 매년 늘어 올해 2777개에 달하고 있다. 국내에는 총 2037개(작년 말 기준)가 지정, 운영 중이다.

하지만 관련 지원 예산은 2015년 52억여원에서 지난해 46억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어 올해도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건립 예산을 제외한 관리 예산으로만 보면 현충시설 한 곳당 예산이 오히려 깎인 셈이다.

현충시설을 관리할 법령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2002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현충시설의 장’(관리 책임자)을 신설했지만 전국에 흩어진 현충시설을 관리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다. 현충시설 관리 주체가 지자체와 학교 등 중구난방이어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6월에야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충시설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제정안은 현충시설 지정과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국가 차원의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 현충시설 지정과 해체에 대한 기준과 절차 규정도 마련하도록 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고보조금을 지원해 관리가 필요한 현충시설 보수 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정환/성수영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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