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기업인 탐구-박진희 SsD건축 대표
하버드 건축대학원 졸업 후 창업
사명 SsD는 '싱글스피드 디자인'
최소 수단-최대 효과란 의미 살려
2014년 송파 주거용건축물 설계
1인가구부터 갤러리까지 활용
한·미서 5개 건축상 받아
퓰리처상 수상한 미국 칼럼니스트
"박 대표는 건축계 떠오르는 별"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서울 송파 석촌호수 옆 ‘마이크로하우징’은 가변형 주거공간이다. 작은 공간 10여 개가 모여 있지만 합치거나 분할할 수 있다. 1인 가구나 부부, 혹은 3대가 함께 살아도 되고 갤러리 및 사무실로 바꿀 수도 있다. 2014년 완공 후 미국과 한국에서 무려 5개의 건축상을 받았다. 이 중엔 미국 뉴욕건축가협회(AIANY)의 최우수상도 포함돼 있다. 설계조건이 까다로워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든 주거용 건축물로 최우수상을 받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박진희 SsD건축 대표의 작품이다. 이 건물의 모형은 지난 6월 스위스 바젤의 비트라디자인뮤지엄에 전시됐고 박 대표는 전시개막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독일 카셀 ‘어바나 익스페리멘타’의 ‘떠오르는 건축가 20명 전시회’에 초청받아 7월 초 작품을 전시하는 등 미국 아시아 유럽을 무대로 뛰고 있는 박 대표를 최근 송파에서 만났다.
2008년 미국 보스턴에 있던 박진희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로버트 캠벨이었다. 보스턴글로브 등에 건축 관련 글을 기고하는 그는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건축 분야의 유명 칼럼니스트다. 하지만 건축가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의 예리한 펜 끝에 건축 작품은 가차없이 발가벗겨졌다.
겁이 덜컥 났다. “이제 활동한 지 5년밖에 안 된 신참에게 왜 전화를 했을까” “뭔가 잘못된 걸까.” 당시 30대 중반이던 박 대표와 충분히 얘기를 나눈 뒤 캠벨은 보스턴글로브에 장문의 글을 실었다. 제목은 ‘떠오르는 스타’였다. 날카로운 비평가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뉴요커 칼럼니스트로 역시 퓰리처상 수상자인 폴 골드버거(파슨스디자인스쿨 학장 역임)도 박 대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왜일까.
건축가로서 박 대표는 한국에선 아직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다르다. 서울대 미대를 거쳐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7년 미국 ‘젊은 건축가포럼상’, 2009년 미국 건축가협회(AIA) ‘젊은 건축가상’, 2012년 미국 건축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들 상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등용문이다. 지난해엔 미국 뉴욕건축가협회 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하버드대 겸임교수와 시카고 일리노이공대에서 ‘모겐스턴 석좌교수’도 지냈다.
박 대표가 높은 점수를 받은 부분은 ‘창의성’과 ‘디테일(세밀함)’이다. 미술관이나 도서관 등 공공건물과 달리 주택은 대지 용적률 주거목적 등 제한이 많아 ‘혁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공유’ 개념을 도입했다. 그가 초기에 인테리어를 맡은 ‘HBNY(뉴욕)’라는 주택을 보자. 이 건물의 주인은 세 가족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여행을 즐겼다. 박 대표는 “단독 소유 공간이 많으면 여행기간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각각의 가족이 그들의 생활양식에 맞게 공간을 변형해 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송파 마이크로하우징도 비슷하다. 대지면적 약 200㎡, 지하 1층~지상 6층 건물이다. 박 대표는 “개별공간은 12㎡ 안팎으로 작지만 천장 아래 가로로 길게 뚫린 창문을 통해 자연채광이 되면서 거주자는 상대적으로 훨씬 넓다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도록 공동공간도 마련했다. 아래층 갤러리가 이런 역할을 한다. 갤러리는 카페나 공연장으로 쓸 수도 있다.
박 대표는 미술학도를 거쳐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됐다. 국내에서 예술고교를 나와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1995년 대학 졸업 후 잠시 기업체에 근무하다가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 진학했다. 환경디자인과 건축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년 반 동안 대학원 재학 중 2년은 건축디자인, 구조 건축사 등 핵심과정을 듣고 1년 반은 외부 유명강사(현역 건축 거장들)의 강의를 들었다. 중간에 한국의 외환위기 여파로 원화 환율이 치솟자 학비 부담이 커져 휴학했다. 그때 하버드대에 특강을 하러 온 건축가 가즈오 세지마 씨의 눈에 띄어 그가 운영하는 도쿄의 설계회사 SANAA에서 일하게 됐다. 세지마 씨는 일본의 가나자와뮤지엄 등을 설계했고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다.
대학원 졸업 후 하버드대가 있는 케임브리지에서 2003년 창업했다. “회사명은 나중에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대충 SsD로 지었어요. 당시 타고 다니던 자전거 ‘싱글스피드’에서 따왔고 끝에 디자인의 D자를 넣었죠. 하지만 첫 프로젝트가 호평을 받으면서 사명으로 굳어졌습니다.”
박 대표는 “기어가 없는 싱글스피드 자전거는 디자인이 단순하면서 군더더기가 없다”며 “이름을 짓고 보니 마음에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디자인할 때 기능과 미적인 면을 모두 중시하지만 일단 외곽구조는 단순하게 처리할 때가 많다. ‘최소의 수단’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는 건축의 기본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가변성을 살렸다.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은 모든 공간을 각기 다른 형태로 꾸몄고 로비와 비상계단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거대한 창을 통해 밖의 연못과 숲을 감상할 수 있어 안과 밖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은 헤이리에서 명소가 됐고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뮤지엄 헤데이크(Museum headache)’라는 말이 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겪는 두통을 의미합니다. 화이트블럭에서 연못과 숲을 볼 수 있게 한 것은 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박 대표는 “유리창에 하얀색 무늬를 넣었는데 이는 눈부심을 막고 필요에 따라 시선을 차단하거나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하우징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띠를 꼬아 건물 외부를 둘렀다. 주거 공간을 보호하는 방범창인 동시에 햇빛의 상태에 따라 건물 이미지가 달라 보이게 한다. 건물 지하 카페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면서 카페 좌석이자 공연 객석이다. 외부로 트인 1층 바닥의 삼각형 유리창을 통해 행인이 지하의 카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건축과 환경에 관한 디테일이 건물 곳곳에 숨어 있다.
그는 세계적 미술전인 독일 ‘카셀도큐멘타’와 병행 행사인 건축전 ‘어바나 익스페리멘타’에 초청받아 7월 초 자신의 작품(모형)을 전시했다. 세계 각지의 ‘떠오르는 건축가 20명전’을 열었는데 그중에 포함된 것이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그의 디자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 건축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박 대표는 “창업 후 SsD건축이 설계했거나 설계안으로 제출한 건수는 약 150건(현상안 포함)에 이르며 이 중 실제 건축된 것은 30%가량”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완공된 건물은 미국과 한국 2개국에만 있지만 설계안을 보냈거나 현상안이 당선된 곳은 독일 중국 파나마 도미니카 체코 등 10개국에 이른다. 여기엔 주거 문화시설 호텔 리조트 상업시설 도시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박 대표는 최근 3년 동안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USC 컬럼비아대 시드니공대 등 미국과 호주 대학에서 ‘마이크로 어바니즘(micro urbanism)’에 대해 특강과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기존의 도시개발이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시작되는 것과 달리 마이크로 어바니즘은 도시 안의 작은 공간을 변화시키면서 전체 도시의 이미지와 기능을 바꿔나가는 콘셉트다.
박 대표는 건축 설계를 하면서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첫째, 사회에 도움이 되는 디자인이다. 그는 “건물 디자인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주거자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다. 박 대표는 “사람이 한곳에 오래 살면 정을 느끼고 그 지역에 투자하며 풍요로운 곳으로 만든다”며 “오래 정착할 수 있도록 애착이 가는 건물을 짓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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