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만 사도 "쇼핑몰 입점 반대" 현수막 걸리는 현실…
골목상권 침해 목소리에 막혀 고용창출 효과는 간과되기 일쑤
표 의식한 정치인도 눈치보기…부천 부지, 사업 무기한 보류
신세계, 10년간 임직원 154%↑…스타필드 하남만 5000명 고용
[ 안재광 기자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사진)은 지난 27일 인스타그램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세계가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고 올렸다. 다른 기업인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난 직후였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복잡했다. 쇼핑몰이든 대형마트든 새로 매장을 열어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신세계 경영진에겐 신규 출점에 반대하는 지역 상인과 이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가 주어졌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유통업을 ‘성장산업’ ‘혁신산업’ ‘관광산업’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상인들과 갈등이 있는 지역은 시간이 더 걸려도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끌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땅만 사도 ‘입점 반대’ 현수막 내걸려
정 부회장의 일자리 창출 의지와 달리 신세계는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 대규모 쇼핑시설을 지으려 하는 곳엔 어김없이 소상공인 반대가 뒤따른다. “신세계(또는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오면 지역 상권이 다 죽는다”는 게 주된 논리다. 일자리 창출 효과나 지역 주민의 편익 향상은 늘 뒷전이다. 하나로 목소리를 내는 소상공인과 달리 지역 주민은 입을 닫기 때문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은 상인들에게 힘을 실어줄 때가 많다.
신세계백화점 부천점이 대표적인 예다. 20년 가까이 방치된 땅에 복합쇼핑몰을 지으려 했던 신세계는 2년을 끌다 최근 사업 계획을 무기한 보류했다. 부천이 아니라 인근 인천시 상인들이 들고일어났다. 쇼핑몰, 대형마트를 다 빼고 상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은 백화점만 짓겠다고 했지만 허사였다. 부천시는 이 대안을 받아들였는데 정작 다른 지방자치단체인 인천시에서 반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경남 창원에선 신세계가 땅만 구입했는데도 ‘복합쇼핑몰 신세계 스타필드 입점 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인근 부동산 개발사들이 분양하면서 “스타필드가 들어와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땅만 샀지 별도 사업 계획을 잡아 놓은 게 없다”며 스타필드 설립을 부인했다. 이 밖에 전북 전주에선 이마트의 자체브랜드(PB) 판매 전문점 노브랜드 입점이, 부산과 광주에선 각각 이마트타운과 복합쇼핑몰 설립이 지역 상인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세계 고위관계자는 “하남 스타필드를 지을 때는 하남이 아니라 강 건너 덕소 상인들이 반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30대 대기업 중 고용증가율 3위
정 부회장의 발언에는 억울함과 기대도 섞여 있다. 그동안 신세계를 비롯한 유통업체가 창출한 고용을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과 일자리 정부를 공언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다.
신세계는 국내 대기업 중 ‘일자리 창출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임직원 수가 약 154%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말 2만3128명이던 신세계의 임직원 수는 작년 말 5만8845명으로 급증했다.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 중 증가율 3위였다. 매출이 증가할수록 고용 창출 효과도 컸다. 매출 10억원당 직원 수는 2.75명으로, 제조·건설업 평균(0.9명)을 크게 앞섰다. ‘고용 있는 성장’을 한 것이다.
작년 문을 연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 한 곳에서만 5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다음달 영업을 시작하는 스타필드 고양도 3000명을 한꺼번에 고용할 예정이다. 통상 스타필드는 점포당 2000~5000명, 신세계백화점은 500~700명, 이마트는 300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했다.
‘유통업에는 비정규직이 많아 고용의 질이 나쁘다’는 지적에 대해 신세계는 반박한다. 이마트는 지난 3월 말 기준 파트타임과 비정규직이 1514명으로, 전체 근로자(2만7765명)의 약 5%에 불과했다. 정 부회장은 5월 말 신세계 고용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세계가 창출하는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라며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노력했으며 정부의 현 정책(일자리 창출 정책)에 가장 잘 맞추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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