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해부
조엘 딤스데일 지음 /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 324쪽│1만7000원
[ 서화동 기자 ]
“피고가 유죄 및 사형선고를 받을 경우 사체 특히 뇌 부위에 대해 면밀한 부검을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유죄선고 후 총살형 집행 시에는 두부 대신 흉부에 총격을 가하도록 해주십시오.”
1945년 6월 미국의 학계를 대표해 존 밀레트 박사가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의 로버트 잭슨 대법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밝히기 위해 뇌 부검을 해야 하므로 손상시키지 말라는 얘기였다. 전범들의 심리검사와 뇌 부검이 필요하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당시 전범재판소에서 받아들여져 다양한 심리검사와 관찰, 뇌 해부까지 시행됐다. 600만 명의 유대인과 비전투원 수백만 명, 집시 20만 명, 정신질환자 및 장애아동 7만 명, 동성애자 1만 명 등 수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홀로코스트 주모자들은 왜 그랬을까.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였을까, 주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악의 해부》는 조엘 딤스데일 미국 UC샌디에이고 정신의학과 석좌교수가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 기록을 통해 악의 실체를 추적한 책이다. 전범 재판에 앞서 연합국 측은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를 뉘른베르크에 파견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와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켈리는 전범들의 심리 파악을 위해 각종 심리검사와 대면조사, 법정·교도소 구내식당·감방 안에서의 심리관찰 등을 통해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저자는 이들 기록을 통해 인류 최악의 전쟁 범죄를 저지른 악의 본질에 다가선다.
당시 연합국 측 정신과 의사들이 조사한 전범은 22명. 저자는 그중 유형이 서로 다른 4명의 심리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 나치 정권의 2인자요 제국 원수였던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부총통, 독일노동전선의 수장이었던 로베르트 레이, 극렬한 인종혐오주의자이며 유대인 혐오잡지 ‘데어 슈튀르머(돌격대)’의 편집자 율리우스 스트라이허다. 이들은 모두 상부의 지시가 아니라 주체적·주도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연합국 측 요청으로 시행한 로르샤흐 검사다. 이는 스위스 출신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가 개발한 것으로, 환자가 자신의 환상이나 관심사를 중립적이고 모호한 잉크반점 카드 위에 투사한다고 보고 이를 통해 피검사자의 머릿속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여겼다. 지금은 구닥다리 검사법이지만 당시엔 최신 심리검사법의 대명사였고 길버트와 켈리는 방대한 분량의 로르샤흐 검사 자료를 남겼다.
연합국 측이 당초 심리검사를 통해 기대한 것은 전범들이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라는 결론을 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나치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노조 활동가들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던 레이는 전범으로 기소된 것을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로 생각했고 재판 도중 자살했다. 부검 결과 그의 뇌에서는 전두엽 손상이 발견됐다. 전두엽에 있는 통제 중추는 인간이 폭력행위를 자제하도록 역할을 하는데, 레이는 전쟁 전 머리를 두 차례 다치면서 전두엽이 손상됐다.
게슈타포를 창설하고 강제수용소를 만든 괴링은 재판 내내 당당했다. 그는 전쟁 중에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라며 어떤 사과나 변명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양심은 없고 뇌만 있는 자’라고 불렸다. 길버트는 괴링을 “자기 목적에 부합할 경우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호감 가는 성격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매우 공격적인 인물”이라며 ‘호감형 사이코패스’로 분류했다.
스트라이허는 반유대주의에 미친 편집증적인 인물로 평가됐다. 헤스는 해리성 기억상실 증상을 보였고 자신이 독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망상에도 시달렸다.
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도 엇갈렸다. 정신과 의사였던 켈리는 사회적 환경이 이들을 ‘악마’로 만들었다고 봤다. 반면 심리학자인 길버트는 전범들이 원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이코패스였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켈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약간씩의 어둠을 찾아냈고 길버트는 몇몇 사람들에게서 보기 드문 어둠을 찾아냈다. 둘 다 옳았다.”
하긴 악의 근원을 어찌 한두 가지 이유나 한두 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 기질적 사이코패스도 있고, 사회가 만들어내는 사이코패스도 있는 게 현실이다. 다만 악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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