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심서 1·2심 선고까지 확대
법원, 내달부터 시행키로 "국민 알권리 보장 위해 필요"
"개인 사생활 침해 우려" 비판
피고인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장 판단으로 가능한 것도 문제
언론사 개별 중계방식도 논란
사이트 공유땐 삭제요구 어려워…영상 악의적 편집·유포 우려도
[ 고윤상 기자 ]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중요 사건’의 재판 결과를 TV를 통해 생중계로 볼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25일 대법관회의를 열고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오는 8월부터 1·2심 재판 선고의 생중계를 허용하기로 했다. 최종심 선고 장면만 공개하던 기존 중계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당장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 1심이 중계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재판 중계 확대가 적절한지를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 vs 인권·사생활 침해
그동안 법원은 본격적인 공판·변론 시작 이후엔 어떤 녹음·녹화·중계도 허락하지 않았다. 재판 당사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서다. 이 같은 조치는 상위법령인 법원조직법 제57조와 헌법 제109조의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조항과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올 4월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국민의 알 권리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중계가 허용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대법원이 규칙 개정 검토에 나선 배경이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6월 전국 판사 29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판사 1013명 중 67.8%인 687명은 재판장 허가에 따라 재판 일부·전부를 중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재판은 공개가 원칙인데 중요 사건은 공간 문제 등으로 인해 관심 있는 국민들의 방청권이 제한받아온 것”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서 재판 중계 허용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우선 생중계 허용 여부가 재판장의 결정사항이라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재판장은 피고인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공적 이익을 판단해 중계방송을 허용할 수 있다. 재판장의 주관적 판단으로 공적 이익과 피고인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등을 비교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따른다.
여론재판으로 흐를 우려도 있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인 황성욱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서라도 1·2심 재판의 선고를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재판이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 중계 방식은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다. 법원은 언론사가 선고 장면을 촬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저작권은 각 방송사가 갖는다. 피고인이 훗날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영상 삭제 등을 요청하더라도 현실적 구제가 어렵다는 얘기다. 유튜브처럼 해외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라간 영상은 삭제요구가 어려워 문제가 크다. 선고 장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명예훼손성 영상을 올리더라도 속수무책이다. 이미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제기된 문제다.
대법원 관계자는 “선고 장면만 촬영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나 왜곡의 발생 여지가 적다”며 “재판장이 피고인 모습은 촬영하지 않고 재판부의 선고 모습만 송출되도록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까지 퍼지는 중계 논란
생중계 논란은 정치권으로 비화됐다. 류여해 한국당 최고위원과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재판 중계 허용 문제를 두고 정면으로 맞섰다. 류 최고위원은 “갑자기 재판 중계를 하겠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하기 전에 박 전 대통령 인권에 관해서 고민해본 적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2년 2월부터 이야기해온 문제”라고 반박했다.
류 최고위원은 피고인이 원치도 않는 재판 중계를 하겠다는 건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대변인은 “선진국에서도 중계를 허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국민적 관심이 큰 재판을 생중계하면 민주주의의 질이 높아지고 검사나 재판부도 재판을 더욱 신중히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상당수 지역에서 1·2심을 인터넷으로 공개하며 영국은 대법원 재판 전 과정과 항소심 일부를 중계한다. 반면 일본은 일부 허가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중계가 막혀 있다.
이날 바른정당은 논평을 통해 “생중계를 허용하면 법리적 다툼에서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은 “국정농단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대법원의 생중계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도 “21세기 인민재판의 부활을 우려한다”며 여론재판으로의 변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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