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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22) 간쑤(甘肅)] 중국을 살찌운 문명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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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문명의 길목. 이런 정도의 거창한 이름을 붙여도 좋은 곳이 중국의 간쑤(甘肅)다. 옛 지명인 감주(甘州)와 숙주(肅州)의 앞 글자 둘을 붙여서 만든 이름이다. 지금의 이 지역 간칭은 甘(감)이라는 글자로 적는다. 지역 자동차 번호판 앞을 장식한다.

왜 ‘문명’을 거론할 수 있는 땅일까. 이곳은 지형이 길고 좁은 복도와 흡사하다. 크고 험한 산맥의 흐름 중간에 있어 사람이 이동하기 비교적 수월한 통행로의 모양새다. 그래서 이곳을 황허(黃河)의 서쪽에 난 긴 복도, 즉 河西走廊(하서주랑)이라고 적고 부른다.

간쑤의 동서 길이는 약 1600㎞다. 이 가운데 특이하다 싶을 정도의 복도 모양 지형은 길이 약 900㎞다. 남쪽으로 흐르는 치롄(祈連)과 아르킨 산맥, 북쪽으로 지나는 마쭝(馬)과 허리(合黎)산의 사이다. 폭은 몇 ㎞로 좁아지다가 때로 100㎞ 정도로 넓어진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비옥하다. 주변의 황무지와 황토 고원에 비해 남북 양쪽의 산맥 등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물 때문에 땅이 기름지고 식생이 잘 자라서다. 사람의 발길이 일찍부터 이어질 수 있었던 환경상의 조건이다. 게다가 동서의 통로 역할이 왕성했다.

동서를 잇는 복도 모양 지형

길고 좁은 복도 형태의 이 길을 따라 서쪽에서는 천리마와 낙타가 이동했다. 포도와 호두, 석류와 후추, 시금치와 홍당무도 들어왔다. 호금(胡琴)이라는 악기, 그리고 아예 서쪽 사람을 일컫는 호인(胡人)들이 이 길을 따라 중국 땅으로 들어섰다. 중국의 종이와 자기, 비단 등도 역시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꾸준히 전해졌다.

이 정도로는 문명을 거론할 정도가 아니다. 문물이라고 해도 좋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굳이 문명이라는 단어를 적는 이유는 달리 있다. 이곳을 통해 중국은 산소와도 같은 새 기운을 얻는다. 바로 불교(佛敎)다. 상쟁(相爭)이 쉴 틈 없이 불붙던 중국 땅에 제자백가(諸子百家) 등이 나와 정신적인 토양을 살찌웠지만 그래도 중국에는 뭔가 크게 부족했다.

현세의 고단한 지평(地平)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초월, 삶을 넘어서는 아득한 정신적 경계는 중국의 크고 넓은 결여(缺如)였다. 그런 중국의 땅에 인도 북부에서 발원한 불타의 가르침이 전해졌고, 마침 그 거대한 루트는 바로 간쑤의 길고 협애한 주랑(走廊)이었다.

구자국(龜玆國: 현재의 신장 쿠차지역) 출신인 쿠마라지바(344~413)는 이곳을 따라 이동한 사람이다. 아울러 중국 초기 불교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싯다르타 부처의 말씀을 한자로 옮기는 한역(漢譯)의 과정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아울러 이후 중국 불교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이미 중국 땅에 진출한 서북쪽 유목 정권의 부름을 받아 서역의 먼 곳에서 동쪽의 중국 땅으로 이동했다. 그 초기에 가장 오래 머물면서 불교의 역경(譯經)에 헌신했고, 아울러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 중국 불교 흥성에 이바지했다.

불교가 전해진 길

간쑤는 동쪽으로 황토고원(黃土高原), 서남쪽으로는 청장(靑藏)고원, 그리고 북쪽으로는 내몽골고원과 접해 있다. 서북쪽으로는 드넓은 위구르, 다시 그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닿는다. 중원의 길목이라고 해도 좋을 산시(陝西)와 동쪽으로 직접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쓰촨(四川)의 거대한 분지를 바라보는 곳이다. 따라서 중국을 중심으로 볼 때 서쪽의 광막한 지역으로 나가는 출구(出口), 거꾸로 보면 서쪽의 방대한 문물과 사람이 중국으로 들어서는 입구(入口)다. 따라서 예부터 이곳은 중국이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여 제 몸을 살찌웠던 길목이다.

눈이 파란색이었다고 알려져 이족(異族)으로 의심받는 당나라 최고 시인 이백(李白),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개방성을 지닌 당나라 왕실의 태조 이연(李淵)과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다 이 지역에서 자란 인물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중국의 판도를 최초로 통일시켰던 진시황(秦始皇)의 조상도 모두 이곳 출신이다. 인구 약 2700만 명, 중국에서 매우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지만 우리가 간쑤라는 지역을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문명의 흐름과 교차를 생각하면 이곳은 중국이라는 땅에 늘 새로운 흐름을 불어넣은 ‘산소통’ 같았던 곳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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