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에 빠진 에너지 정책
석탄으로 전력 43% 생산
미국·러시아와의 외교적 갈등 속 셰일가스 생산은 엄두도 못내
소비자·기업 커가는 볼멘소리
산업용 전기 세금, 프랑스의 3배
주거용 전기료 10년 만에 2배↑
EU 평균가격보다 30% 높아 언제까지 탈원전 표방할지 주목
[ 오춘호 기자 ] 독일의 대표적 에너지 기업인 RWE는 2011년 독일 정부를 상대로 원자력발전 중단에 대한 취소 소송을 독일 연방 법원에 제기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신정부가 2020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었다. RWE는 이 조치에 따라 파산 신청을 낼 만큼 회사가 곤경에 처했다. 물론 법원은 RWE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 정부의 갑작스러운 에너지 정책에 부글부글 끓는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전기 요금이 치솟으면서 에너지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업종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급등한 독일의 전기료
독일의 주거용 전기 요금은 10년 전 대비 2배 이상 높아졌고, 산업용 전기 요금도 그만큼 올랐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이탈리아 다음으로 전기료가 비싼 나라가 독일이다. 지난해 말 기준 ㎾h당 0.149유로(약 196원)로 EU 평균가격(0.114유로·약 150원)보다 30% 높다.
전기 값에 포함되는 세금과 부과금이 다른 EU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프랑스의 3배, 영국의 2배나 된다. 독일의 산업용 전기 요금에서 이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6.8%에 이른다. 반면 가까운 체코는 아예 전력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전기 요금이 높아진 건 물론 메르켈 정부의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때문이다. 메르켈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원전의 전면적 폐쇄를 결정하고 전체 에너지원 가운데 신재생에너지를 2025년까지 30%, 2050년까지 50%로 늘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효율적인 원전을 폐쇄하고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랐다. 독일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을 20년 동안 정부가 고시한 기준 가격에 구매해 신재생사업자가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시행했다. 이런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매년 270억달러(약 30조원) 이상 부가적 비용을 에너지 소비자와 소비 기업에 부과해야 했다.
독일 기업들 사이에 원전 폐쇄가 ‘에너지 재앙’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전기 가격이 당초 예상보다 급상승할 경우 국가가 약 4000개 기업의 전력 소비에 보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관련 일자리도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탈원전 때문에 독일의 국가경쟁력이 하락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원전 줄자 석탄·가스가 주요 동력원
이런 ‘친환경’적인 독일에서 ‘비친환경’적인 석탄 발전이 늘어나고 있는 건 큰 아이러니다. 지난해에도 전체 독일 전력 생산의 43%가량이 석탄(갈탄과 무연탄 포함) 발전을 통해 생산됐다. 독일 정부는 과거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고 했었다. 2007년에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는 모순되지만 26개의 석탄발전소를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도 있었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는 무연탄 탄광은 2018년에 문을 닫게 되지만 갈탄 탄광은 2045년까지 생산할 것으로 탄광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석탄발전의 원료로 사용되는 갈탄은 독일에 풍부하고 동시에 이를 통해 원료 수입 비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자리도 보장한다.
독일은 셰일가스가 일부 나오지만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북동지역의 폴란드 국경 쪽과 네덜란드 국경 지역인 북서지역 및 프랑스 국경지역을 낀 라인강 상류 지역의 중간 부분에 집중 매장돼 있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개발을 둘러싼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독일의 갈등도 결국 에너지 문제
독일에서 천연가스가 중요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은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대표적 에너지원이던 원전은 탈원전 정책 때문에 줄고 있고, 증가하는 신재생에너지는 생산비가 높아 전기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어서다. 친환경 독일 에너지 정책의 총체적인 딜레마다. 그나마 가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어서 수요가 늘고 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폴란드를 찾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을 강조해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해석도 있지만, 독일로 향하는 러시아산 가스를 차단하고 대신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출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하려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 중이다. 러시아 발트 해안을 따라 독일의 그라이프스 발트로 직접 송유관을 연결하려는 전략이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이 주도하는 이 계획은 총 길이 1200㎞의 파이프라인을 바다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2019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이 구상에 투자하는 5개 기업 중 2개가 독일 기업이다.
유럽에 셰일가스 수출을 늘리려는 미국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들은 미국 의회를 찾아가고 백악관을 움직였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러시아 경제 제재 강화안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유럽에 에너지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독일은 강력히 반발했다.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의)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출은 유럽 문제며 미국 문제가 아니다”고 말할 정도다. 최근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와 공동으로 제재안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로선 그만큼 안정적인 가스 공급이 중요한 문제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메르켈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크게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기 요금이 너무 높다는 소비자와 기업의 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인터넷매체 데일리콜러는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하나의 재앙이 되고 있다”며 “오히려 석탄 등의 수요 증가로 정부의 이산화탄소 감축과 친환경이라는 정부의 목표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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