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어주는 기자 - 서울 이태원 '스택'
[ 이유정 기자 ] 마감하고 간식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당이 떨어진다고 빵을 집어 먹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밥시간은 됐는데 배는 그리 고프지는 않고, 이태원까지 왔는데 나름 분위기 좋은 데서 맥주 한 잔은 하고 싶고. 이런저런 생각을 얘기하니 친구는 웃으며 앞장섰습니다. 저를 끌고 간 곳은 ‘만맥(만두+맥주)’집 스택(Stacked)이었습니다. 간판 밑에는 ‘덤플링 바’라고 쓰여 있습니다.
만맥은 또 뭐야. 이태원까지 와서 만두라니. 중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만두는 지겹게 먹었습니다. 이골이 난 거지요. 분위기 좋은 곳을 가고 싶었던 지라 계속 구시렁대며 따라갔습니다. 어차피 난치병인 결정장애(?)를 갖고 있어 뾰족한 대안도 없었거든요. 이 구시렁거림은 건물 앞에 다다르자마자 쏙 들어갔습니다. ‘어라 이건 그동안 봐온 만두집이랑 너무 다른 비주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스택의 건물 디자인은 밖에서만 보면 만두집이란 걸 알기 힘들 정도로 모던합니다. 2~3층 홀은 탁 트인 창문에 와인잔 등으로 꾸민 바를 갖추고 있습니다. 괜찮은 수제 맥줏집 분위기였습니다. 통유리로 된 1층 부엌에서 만두를 빚는 모습, 만두가 담긴 스티머를 들고 서빙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 여기가 만두집이구나’ 싶었습니다.
제일 많이 먹는다는 샤오룽바오와 구채교 야키교자에 바이엔슈테판 헤페바이스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참고로 이 집은 국내에 독일식 수제밀맥주 바이엔슈테판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는 업체가 운영한다고 합니다.
솔직히 만두만 먹었을 때는 큰 감동이 없었는데요. 미식가인 제 친구의 표정도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넘겼습니다. 때마침 창가에서 바람이 살랑 불어오자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두의 짭조름한 간이 맥주를 부르고 맥주를 한 모금 하니 만두가 생각나고. ‘만두는 원래 맥주랑 먹는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조합이 잘 맞았습니다. 너무 헤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고, 안주인 듯 밥 같은 매력도 있고요. 가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덤플링은 5000~8000원대, 맥주는 수제 맥주가 6000원부터 시작합니다.
실제 외국에서 만두+맥주, 만두+와인의 조합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치맥(치킨+맥주), 피맥(피자+맥주)의 인기에 밀려 다른 조합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하네요. 만맥에 눈을 뜨고 나니 다른 음식도 예사로 보이지가 않는데요. 만두를 시작으로 제 나름대로 최고의 맥주 마리아주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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