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때문이라지만…성과 압박 공대문화도 한몫"
수사발표에도 모호한 범행동기
논문 질책후 범행 결심했다지만 학생들 "피해교수 실력있고 젠틀"
전문가 "평소 문제없는 학생도 스트레스땐 공격성 나타내기도"
위계질서 강조…공대 랩 문화
실적있어야 연구비 딸 수 있어…상대적으로 학생들 강하게 압박
졸업·취업으로 엮인 '갑을관계' "연구실 운영방식 등 바뀌어야"
[ 성수영 / 박진우 / 구은서 기자 ]
연세대 ‘사제 폭탄’ 사건의 피의자인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김모씨(25)의 범행 동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석사 논문 작성 과정에서 지도교수이자 피해자인 김모 교수로부터 질책을 받은 뒤 범행을 저질렀다는 조사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하지만 피해자 교수는 소위 ‘갑질’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데다 학문적인 성취도도 높은 것으로 전해져 경찰 수사 발표로도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 공대 대학원의 운영이나 구조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방식이라 차제에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극단적 행동 부른 ‘원생 스트레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연구 지도를 받으면서 (담당 교수이자 사제 폭탄 피해자인) 김모 교수로부터 질책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난 5월 논문 작성 때문에 크게 꾸중을 들은 뒤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져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김씨 진술과 달리 김 교수가 욕설을 퍼붓거나 인격 모독성 발언을 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구속영장 발부 시 김씨에 대해 정신 감정을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료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김씨의 범행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공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A씨는 “김 교수는 2006년에 처음 학교에 발령받은 실력 있는 젊은 교수로 잘 가르치고 예의 바른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전반적으로 이공계 랩(연구실)이 군기가 센 편이긴 하지만 김 교수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갑질’하는 스타일도 아니다”는 설명이다. 목과 팔 등에 화상을 입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 중인 김 교수는 경찰에 “교육자로서 피의자에게 선처를 부탁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논문 압박에다 지도교수의 질책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평소 성격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각한 공격성을 표출할 때가 있다”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지도교수를 해쳐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과 압박하는 특유의 ‘공대 문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독 위계 질서가 강한 국내 이공계 대학원 문화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의 한 공대 대학원생 B씨는 “공대는 눈에 보이는 실적이 있어야 연구비를 딸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교수들이 대학원생을 강하게 압박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 졸업생 C씨도 “일부 랩에서는 개인 통장으로 입금된 연구비를 도로 걷어 교수가 혼자 쓰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특히 교수가 따온 외부 프로젝트는 자신이 벌어온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의식도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연구와 관계없는 개인 잡무를 맡기는 일부 ‘갑질 교수’에 대한 성토도 쏟아진다. 연세대 화공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D씨는 “자녀 과제를 대신 해달라거나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교수도 있다”고 했다. “교수 승인이 없으면 박사 졸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졸업을 볼모로 갑질하는 것”이라며 “일부 갑질 교수들은 밉보인 학생들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변화를 요구하는 대학원생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는 사례도 등장했다. 서강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이날 마포구 백범로 본관 캠퍼스에서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포식’을 열고 “대학원생들이 차별 없이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원생이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 기여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학업·연구권, 객관적 기준에 따라 공정한 심사를 받을 권리 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도 행사에 참석했다.
성수영/박진우/구은서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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