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호 기자 ] 관용구로 “감투(를) 썼다”고 하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감투의 본래 의미를 알고 나면 서술어로 ‘쓰다’가 온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한자어인 줄 알고 있는 이도 많은데, 우리 고유어다.
지난 호에서 ‘주책’과 어울린 말의 변화 과정을 살펴봤다. “주책은 본래 주착(主着)에서 온 말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주착은 버리고 주책으로 통일해 쓴다. 그것이 만드는 말 가운데,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실없는 것을 과거엔 ‘주책없다’라고만 썼는데 지금은 ‘주책이다’도 함께 허용했다. ‘주책맞다, 주책스럽다’도 표준어가 됐으며, 다만 ‘주책 떨다, 주책 부리다’는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써야 한다”는 게 요지다.
원래 ‘모자’를 가리키던 말
주착이 주책으로 바뀐 것처럼 우리말에는 한자말이 형태를 바꿔 표준어가 된 게 꽤 많다. 가령 초생(初生)달이 변한 ‘초승달’, 음(陰)달이 변한 ‘응달’도 모두 같은 경우로 뒤의 바뀐 말이 바른 말이고 앞의 것은 비표준어다. 설마(雪馬)가 썰매로, 이어(鯉魚)가 잉어로, 침채(沈菜)가 김치로, 고초(苦椒)가 고추로, 염치(廉恥)가 얌치로, 그게 또 한 번 바뀌어 얌체로, 지룡(地龍)에 접미사 ‘-이’가 붙어 지렁이로 바뀐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책이 한자에서 온 말이라는 데는 이설이 있다. 언론인이자 한글학자이신 고 정재도 선생은 ‘주책’이 본디부터 쓰던 고유어인데 억지로 한자를 가져다 붙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접떨다(욕심을 부리며 추하고 염치없게 행동하다), 주체스럽다(짐스럽고 귀찮다) 따위가 토박이말이듯이 주책도 같은 계열의 말이라는 것이다.(정재도, <국어사전 바로잡기>)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에서도 주책을 한글로만 적을 뿐 한자 정보는 따로 없다. 우리말로 봤다는 뜻이다. 이런 부분은 학계에서 더 깊이 있는 연구로 풀어야 할 과제다.
어찌 됐든 요즘은 “그 사람 참 주책없어”라고 하든, “그 사람 참 주책이야”라고 하든 어법적으로 다 허용된다는 게 중요하다. ‘주책없다’가 ‘주책이다’로 바뀌는 현상을 학자들은 의미변화(확대, 축소, 이동이 있다)로 설명한다. 의미변화란 어떤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그 본디의 꼴대로 혹은 소리를 더하거나 덜해 그 뜻을 여러 가지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팔 걷다’ ‘코 빠지다’…의미가 변한 말
예컨대 ‘감투’를 요즘은 벼슬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쓴다. 하지만 원래는 ‘머리에 쓰던 의관(衣冠)의 하나’로 일종의 모자를 가리켰다. 의미 확대에 해당한다. 관용구로 “감투(를) 썼다”고 하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감투의 본래 의미를 알고 나면 서술어로 ‘쓰다’가 온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한자어인 줄 알고 있는 이도 많은데, 우리 고유어다.
어린아이가 가진 적은 돈을 가리킬 때 ‘코 묻은 돈’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자 그대로라면 ‘코’가 어찌 돈에 묻을 수 있을까. 콧물이 묻은 것이다. ‘다 된 일에 코 빠뜨린다’는 말도 있다. 이 역시 관용구 ‘코(를) 빠뜨리다’를 활용한 말이다. 못 쓰게 만들거나 일을 망칠 때 하는 말이다. 속담에 ‘다 된 죽에 코 빠졌다’라고도 한다. 모두 콧물을 뜻하는 건데, 코에 의미확대가 일어나 가능한 말이다.
관용구 ‘팔을 걷어붙이다’도 같은 범주의 표현이다. 어떤 일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일할 태세를 갖춘다는 뜻이다. 그런데 소매도 아니고 팔을 어찌 걷을 수 있을까. 이때도 마찬가지로 팔이 관용어로 쓰이면서 ‘팔소매’의 뜻으로 의미가 이동한 것이다.
“아침 먹었냐” “오늘 머리를 잘랐다”라고 할 때의 아침, 머리도 같은 경우다. 아침은 ‘아침에 끼니로 먹는 음식’, 즉 아침밥이란 뜻으로, 머리는 곧 머리털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돼 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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