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 보수당 과반 확보 실패
영국 집권 보수당 과반의석 상실…'헝 의회' 출현
위기의 메이…리더십 타격
복지 축소·테러로 예상밖 패배
책임론 부상…총리직 상실 위기
보수당은 연정 통해 정권 유지
브렉시트 협상 차질 불가피
야당이 반대하는 '하드 브렉시트'
총선 '자충수'로 협상력 흔들
EU "복잡한 상황 더 복잡해져"
[ 이상은 기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조기 총선 승부수가 결국 ‘자충수’로 드러났다. 보수당이 오히려 의석을 잃으면서 메이 총리가 주장하던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시 이민을 허용하지 않고 EU 단일시장 접근권도 포기)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어느 정당도 과반을 얻지 못한 ‘헝(hung) 의회’가 되면서 영국의 정치적 혼란이 커질 전망이다.
◆메이의 자충수
지난 4월 메이 총리는 원래 2020년 예정됐던 차기 총선을 앞당겨 6월8일에 치르자고 제안했다.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국민의 지지를 확인해 하드 브렉시트 전략에 힘을 싣겠다는 복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론조사 결과는 그의 편이었다. 650석 중 330석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당이 여유롭게 과반(326석 이상)을 얻을 것이라고 점쳤다.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있던 과반도 내주는 처참한 결과다. 영국 BBC방송은 보수당이 318석을 얻었다고 9일 보도했다. 노동당은 무려 30석 늘어난 262석을 얻었다. 보수당이 여전히 제1당을 유지했지만 어느 정당도 과반을 얻지 못했다.
◆두 달 만에 바뀐 판세
메이 총리의 전임자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브렉시트 주장을 꺾기 위해 지난해 6월23일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브렉시트 추진이 결정되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메이 총리도 비슷한 처지가 됐다. 그는 9일 오전 “정국 안정을 위해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리더십엔 깊은 상처가 났다.
조기총선 승리를 자신하던 그는 지난 두 달 사이 실책을 거듭했다. 가장 치명적인 건 노인요양 지원 대상을 축소하겠다는 공약이었다. 노년층이 크게 반발했다. 메이 총리는 사흘 만에 말을 되삼켰지만 타격을 입었다.
TV 토론을 거부하고 기자의 질문에 로봇처럼 답해 소통을 피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영국 가디언지 등은 그를 ‘메이봇’이라고 비아냥댔다. 선거 전 맨체스터와 런던브리지에서 잇따른 테러도 악재였다.
10석을 얻은 민주통합통일당(DUP)은 보수당 정부가 출범할 수 있도록 총리 신임안을 지지해주고 예산 등에서 발언권을 갖는 형태로 협력하기로 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정부 구성 권한을 수락받은 뒤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정부에서 총리직을 이어갈 것”이라며 “오는 20일 시작되는 브렉시트 협상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드 브렉시트’ 전략 수정될 듯
메이 총리가 추진하던 하드 브렉시트 전략도 수정해야 할 판이다. 데이비스 장관은 투표 전날 스카이뉴스에 출연해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을 포기하겠다는 게 보수당의 선거 공약이었고, 유권자들의 생각은 투표 결과로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을 제외한 야당은 거의 모두 하드 브렉시트에 반대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 결정을 존중하지만,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의 혜택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공약했다.
◆브렉시트 일정도 연기 전망
더 강해진 메이 총리와 오는 19일부터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할 줄 알고 준비해 온 EU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EU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안 그래도 복잡한 협상이 더 복잡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당 장관은 사견임을 전제로 올해 총선이 다시 치러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 경우 브렉시트 협상은 당분간 중단될 수도 있다. 영국이 내부 리더십 문제를 정비할 시간을 가진 뒤 협상장에 나서려 할 경우, EU도 2019년 3월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발효 시한 연기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와 독일이 2019년 유럽 각국에서 대거 치러질 선거에 브렉시트 이슈가 영향을 주지 않길 바라서다.
■ 헝(hung) 의회
영국 등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과반 정당이 없는 상황을 뜻한다. 어중간하게 걸려 있다는 뜻이다. 다수당은 소수 정당과 연합해야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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