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4대 위험' 긴급 점검
[ 김은정 기자 ] 주춤했던 가계대출 급증세에 또다시 경고등이 켜졌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서다. 지난 5월에만 은행권 가계대출은 6조원가량 늘었다. 가계빚 추세가 심상찮은 조짐을 나타내자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8월까지 가계부채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 가계부채 비율이 증가했다는 통계도 나와 문제의 심각성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선 숨겨진 자영업자 대출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공개된 수치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일까.
(1) 중도금 대출이 화약고?
가계부채 키운 '주범'이지만…연체율 0.3% 불과
136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중 70%가량은 주택담보대출(2017년 1분기 말 기준)이다. 이 중 약 23%는 아파트 중도금, 잔금 대출 등 집단대출이다. 금액으론 200조원이 넘는다. 이는 선분양을 하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대출형태다. 다른 나라에선 가계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를 감안해 가계부채 국제 비교에서 한국의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높게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더구나 집단대출은 건설회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 담보로 대출을 받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계대출과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집단대출은 입주 시점에선 주택담보대출로 전환되는 데다 최근 증가 속도가 가팔라 결국 가계부채 부실의 화약고가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주택 시장이 경색되면 가계부채 위기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한 해 동안 집단대출은 18% 증가했다. 가계부채 증가율(11.7%)을 훌쩍 뛰어넘었다.
물론 대출해준 금융권으로선 확실한 담보가 있어 가계가 대출상환을 못할 경우에도 충분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집단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각각 0.3%, 0.2%에 그친다. 오세진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급증한 집단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일반적인 가계대출과 달라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2) 한국만 가계 빚 늘었나
가처분소득 대비 5년새 21%P↑…스위스도 26%P↑
한국의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 대비 높은 편인 건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국제 비교가 가능한 자금순환통계(2015년 말 기준)를 기초로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 총량을 추산한 결과 OECD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한국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9.0%로 OECD 회원국(35개국) 중 25개국 평균(129.2%)보다 39.8%포인트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5년간 상황을 봐도 주요국과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010~2015년 이 비율의 OECD 평균치는 0.5%포인트 하락했다. 미국(-22.6%포인트), 영국(-11.8%포인트), 독일(-7.4%포인트)이 대표적이다. 이 기간 한국은 오히려 21.4%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한국만 오른 건 아니다. 스위스도 이 기간 26.7%포인트 올랐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면 한국은 91.0%로 OECD 평균(70.4%)보다 20.6%포인트 높다.
2014년 하반기 주택시장 개선과 맞물려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더 가팔라졌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53.4%에 달했다. 2014년부터 2년 새 17.2%포인트 뛰었다. 직전 2년간(2012~2014년) 이 비율은 3.3%포인트 상승했다.
(3) 한계가구 빚 얼마나 위험한가
금리 1%P 상승 때 원리금상환 부담 3.3%P 높아져
가계부채의 가장 약한 고리는 한계가구 빚이다. 한국신용평가가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가계금융·복지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가처분소득이 원리금상환액에 못 미치는 한계가구는 전체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19.9%에 달했다. 금융부채 보유가구가 약 1086만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한계가구는 200만 가구를 웃돈다.
금리 상승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집단은 한계가구다. 이 때문에 가계부실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 한계가구가 보유하고 있는 가계빚은 80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했을 때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DSR·2016년 말 기준)은 38.7%에서 40.4%로 뛴다. 한계가구는 이 폭이 더 크게 벌어진다. 지난해 말 127.3%에서 130.6%로 높아진다는 게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금리가 상승할 경우 한계가구 보유 빚 80조원이 곧바로 부실로 이어져 전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4) 숨은 가계부채 규모는
자영업자 670조 빌려…사업자대출은 가계부채서 제외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자영업자의 부채 규모는 약 670조원이다. 전체 가계부채(2017년 1분기 말 기준 약 1360조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치킨집·커피숍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기업대출로 분류되는 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사업자대출을 받아 생활비 등 가계대출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장사가 잘되지 않으면 인건비·임차료를 위해 일단 가장 싼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한도가 차면 신용대출이나 사업자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다. 자영업자가 생활비 목적으로 빚을 내는 사업자대출은 가계부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가계부채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은 연평균 10.7% 증가했다. 일반 원화대출 연평균 증가율(6%)보다 4%포인트 이상 높다. 한국기업평가는 자영업자의 높은 폐업률과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 소득 저하 추세를 감안할 때 내수 침체가 이어지고 금리 상승이 본격화하면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건당 금액(1억3400만원)이 주택담보대출(8600만원)과 개인신용대출(1800만원)에 비해 고액이기도 하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자영업자 사업자대출은 용처에 대한 엄격한 사후 관리를 하기 때문에 가계대출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며 “가계대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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