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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북한에서 온 신입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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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오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갓 입사한 북한 새터민 출신 신입사원 K군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필자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통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헌신하고 싶은 마음에 통일부로 옮기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은행의 많은 분이 여러모로 가르쳐주고 도와주셨는데 죄송하다고 했다. 필자는 오히려 축하할 일이니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새로운 직장에서 본인과 나라를 위해 더욱 의미있고 보람찬 일을 해달라는 당부와 격려를 건넸다.

K군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지난해 KEB하나은행이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개설한 ‘탈북청년 멘토링 프로그램’이었다. 임직원이 북한 출신 청년들의 멘토가 돼 이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한국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KEB하나은행은 이 청년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열정적이고 성실한 태도 등을 높이 평가해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년 몇 명을 신입행원으로 채용했다. K군도 그중 한 명이었다.

K군이 돌아가고 난 뒤 가슴이 뿌듯해지는 기분을 느끼다가 문득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임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멘토 역할을 했던 북한 출신 여학생이 있었는데, 늦깎이 대학생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해 탈북 6년여 만에 멋진 남한 청년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됐다고 한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결혼에 이른 과정, 준비 애로사항 등을 얘기하다 도와줄 것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부탁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녀가 주저하면서 어렵게 꺼낸 말은 임직원분들이 결혼식에 많이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사연은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구사일생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한국에 와서 대학 3학년 때 예비 신랑을 만나 크게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왔는데, 시댁에서 며느리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주위에 숨기고 싶어 한다고 했다. 예비 시어머니 말씀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국에 친인척도 없고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도 많지 않아 고민이 크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북에 남아계신 아버지도 그립고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는, 참으로 가슴 먹먹한 얘기였다. 후일담에 따르면 많은 임직원이 그 결혼식에 참석해 젊은 남남북녀 커플의 첫 출발을 축하해줬다고 한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이 사연이 어찌 이 젊은이만의 아픔일까. 새터민 3만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이들의 눈물을 훔쳐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 hana001@hanaf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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