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유통산업
갈수록 치열한 유통업체 입사 경쟁
승진 없는 무기계약…'고용의 질' 논란도
[ 안재광 기자 ] 박혜진 롯데백화점 마케팅부 대리(30)는 ‘4수’ 끝에 2012년 입사했다. 다른 기업에 취업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어가 유창하고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롯데백화점에 꼭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롯데는 국내 백화점 중 유일하게 중국에 매장이 있다. 현재 그는 왕훙(중국 파워블로거) 초대 행사 등 중국 이벤트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박 대리는 “일에 대한 만족도뿐 아니라 여성 관련 복지 제도가 잘돼 있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롯데에는 박 대리처럼 재수, 삼수를 한 직원이 많다. 대기업이면서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 유통업이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인 영향도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2014년 조사에선 여대생이 가고 싶은 기업 5위에 롯데쇼핑이 올랐다. 작년 인크루트 발표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대학생 선호 직장 4위를 기록했다.
기획·마케팅·상품기획자(MD) 등 유통업의 핵심 직종만 인기가 많은 게 아니다. 유통 기업이 온라인, 해외 진출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해외 영업이나 정보기술(IT) 개발 업무에도 취업자가 몰리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임시직, 비정규직도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고 전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는 일이 많아 경력단절 여성 등 취업이 쉽지 않은 사람도 많이 지원한다는 얘기다.
유통산업이 많은 사람을 채용하다 보니 구인난에 처한 중소기업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경기 이천에 공장이 있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생산직 여직원들이 유통업체로 옮기는 바람에 일손이 늘 달린다”고 말했다.
논란도 있다. 유통업체들이 창출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처우가 좋지 않은 시간제·기간제 일자리가 많다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작년 말 기준 여직원 9964명 중 88.8%인 8852명이 무기계약직이다. 무기계약직은 주 40시간 미만 일을 하면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이 매년 연장되는 근로 형태다. 승진은 하지 못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에 있다고 해서 ‘중규직’이라고도 불린다. 롯데 관계자는 “이들의 업무는 계산 등 단순한 업무여서 완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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