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어제 언론 인터뷰에서 “재벌 기득권에 대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며 다시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을 압박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지난주 “회사별 특성이나 개별 근로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얘기한 데 대해 질책을 이어간 것이다.
김 부회장의 발언은 “정규직 전환 요구로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원론적인 것이었다.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로, 근본 원인부터 풀어야 한다”고도 했다. 비정규직의 95%가 중소기업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회원사의 90%가 중소기업인 경총으로서는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이 발언을 문제삼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면서 경총은 물론 다른 경제단체, 대기업들까지 아예 말문을 닫고 있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면 기업을 윽박지르는 분위기를 조성할 게 아니라, 문제의 정확한 원인과 실태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2000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따낸 ‘완전고용 합의서’를 비정규직 문제의 출발점으로 꼽는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지적은 핵심을 짚은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교수는 현대차 노조가 정규직 고용과 임금을 보장받는 기득권을 챙기기 위해 생산량 변동에 따라 비정규직을 투입하도록 합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대기업 강성 노조의 반성과 기득권 해소 없이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2016년 기준 32.8%)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일본(2015년 37.5%)이 문제를 푸는 방법도 참고할 만하다. 아베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불합리한 대우 차이를 좁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해소가 어려운 쪽은 공기업과 대기업이 아니라 정규직을 더 채용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이다. 이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대기업 강성 노조의 양보부터 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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