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알파고
구글 AI 알파고, 세계 1위 커제에 첫 판 완승
289수 만에 한 집 반승…무리하지 않고 맥점 공략
두터움 더하며 승기 잡아…막판까지 별다른 위기 없어
힘 한번 못 쓴 커제, 3·3 착점…극단적 실리 포석
시간 두 배 쓰며 총력전 펼쳤지만 덤 못내며 결국 1국 내줘
[ 송형석/유하늘 기자 ]
이변은 없었다.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중국 바둑의 자존심인 커제 9단을 무너뜨렸다. 커제 9단은 현대 바둑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파격적인 수들을 선보이며 알파고를 흔들었지만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알파고는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 3번기 1차전에서 세계랭킹 1위 커제 9단에게 289수 만에 백 한 집 반승을 거뒀다. 흑돌을 선택한 커제 9단은 초반부터 극단적인 실리 작전을 펼쳤다. 첫수 소목에 이어 세 번째 수를 좌상귀 3·3에 놓았다. 5수째에도 백의 우하귀 화점 밑에 3·3을 파고드는 파격을 꾀했다. 3·3은 바둑판의 가로 3선, 세로 3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집을 확보하는 데는 용이하지만 중앙 승부에선 불리하다.
백을 잡은 알파고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커제 9단을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요소요소 정확히 맥점을 짚어 나갔다. 눈에 띄는 수는 초반 좌변에 둔 백 50과 54수였다. 백 4점을 잡은 흑돌을 이 두 수로 절단했다. 인간 기사였으면 좌면의 변화가 끝났다고 보고 다른 곳으로 넘어갔을 시점이었지만 알파고는 두터움을 더하는 쪽을 택했다. 목진석 한국기원 대표팀 감독은 “인간 기사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라며 “화려한 수는 아니었지만 이때부터 승부가 조금씩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우상귀를 파고 든 알파고의 84번째 침입 수도 놀라움을 자아냈다. 알파고가 완전히 흐름을 장악하며 승기를 굳힌 순간이다. 바둑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커제 9단은 도저히 덤을 뽑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결국 289수까지 가는 승부 끝에 알파고에 무릎을 꿇었다.
바둑 국가대표 코치인 이영구 9단은 “알파고가 완벽했다”며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는 오류가 조금씩 나왔지만 오늘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끄러운 수들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AI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버전을 궁금해하고 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때는 인간의 기보를 대량 학습해 바둑 실력을 키운 알파고 1.0이 출전했지만 이번엔 혼자 바둑을 두며 실력을 다진 알파고 2.0이 나왔다는 관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구글이 밝히기 전까지는 모른다”면서도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인터넷 바둑을 통해 60승을 거둔 기존 버전의 ‘마스터’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국은 중국 룰로 진행됐다. 덤도 7집 반이 적용됐다. 제한시간은 각자 세 시간이며 초읽기는 60초 5회가 주어졌다. 커제 9단과 알파고 모두 초읽기를 쓰지 않았다. 커제는 13분, 알파고는 한 시간 이상을 남겼다. 이번 대회에 우승상금은 150만달러(약 17억원)다. 상금과 별도로 커제는 세 판의 대국료로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를 받는다.
송형석/유하늘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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