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 협상 주역' 대선 압승
"국민 승리…국제사회와 교류할 것"
이란서 금지된 트위터에 당선 소감도
높은 실업률 등 체감경기 여전히 암울
제재 '완전해제'로 경제 살리기 나설듯
[ 박상익 기자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제12대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꺾었다. 2015년 미국 등 서방 진영과의 이란 핵포기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그를 이란 국민이 다시 선택했다. 핵·미사일 개발로 군사력 증강에 의존한 강경주의보다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발전을 더 원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슬람 보수세력을 껴안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서방의 대(對)이란 제재를 풀고 꾸준히 경제를 성장시키는 게 2기 로하니 정권의 숙제다.
◆서방 세계와 연결통로 만들어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19일 치러진 제12대 대통령선거에서 57.1%(2354만9616표)를 득표해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경쟁자인 이슬람 보수파 에브라임 라이시 후보는 38.3%(1578만6449표)에 그쳤다.
로하니 대통령은 당선 연설에서 “이란 국민은 극단주의를 멀리하고 국제사회와 교류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표현했다”며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한 결과”라고 말했다. 테헤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바하레 씨(30)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로하니는 여러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며 “전보다 그를 더 신뢰하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1948년 이란 중북부 셈난주(州)에서 태어나 이란 최고 명문대인 테헤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1995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칼레도니언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셈난주 중앙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이란 핵협상 대표를 맡았다.
그는 2013년 대선에서 하타미 전 대통령,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임 대통령인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부정선거 의혹을 받은 데다 아마디네자드 정부에서 억눌린 민심이 로하니를 깜짝 당선시킨 원동력이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개혁·개방정책을 펼쳤다. 무엇보다 2015년 7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의 핵협상을 타결하며 이란에 가해진 경제 제재를 풀어내 강한 지지를 받았다. 정치,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서도 개방정책을 이끌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지 2시간30분 만에 트위터를 통해 “오늘의 승리는 이란 국민의 것이며, 선거운동 중 발표한 공약을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대부분 소셜미디어는 이란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그의 취임 일성은 강력한 추가 개혁·개방 의지를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제재 완전히 푸는 숙제 남아
로하니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이란의 경제활동이 더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이 안팎에서 나온다. 이란의 실업률은 12%, 게다가 청년 실업률은 26%에 달한다.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2015년 12억6100만달러(약 1조4161억원)에서 지난해 118억달러(약 13조2514억원)로 10배 가까이로 증가했지만 국내총생산(GDP)은 4000억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그를 다시 선택한 국민이 경제 호전을 실감하도록 로하니 대통령은 더욱 과감한 성장 계획을 내놓아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란은 2015년 핵협상 결과 이행 수준을 놓고 서방세계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는 아직 해제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도 투자자들이 이란과의 거래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20일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란은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멈추고 이란 국민이 응당 누려야 할 삶을 살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핵 합의로 미국은 이란에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2차 제재를 풀었지만 테러 지원, 탄도미사일 개발,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부과한 제재는 유지하고 있다. 보잉(미국 항공사)·에어버스(유럽 항공사)·푸조(프랑스 자동차업체) 등이 발 빠르게 이란과 수출계약을 체결했지만 여전히 많은 글로벌 기업은 ‘더 기다려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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